줄리아 라이케르트, 스티븐 보그나르 감독. 아메리칸 팩토리
뭔가를 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서 두 번 일하지 않도록 하시래요.
용해로 일만 20년 넘게 했죠. 어렵지만 좋아하는 일이에요.
큰 가위로 *** 상원 의원 머리를 잘라버릴 거예요.
노조 만들면 자를 거예요. 다시는 공장에 못 들어와요.
이 회사에서 노조가 생기는 건 원하지 않소.
첫째가 결과물, 둘째가 속도야.
'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
단결, 긴장, 엄숙, 활발...
우리의 구호는? 현상유지는 곧 퇴보다!
여기 노동자들은 한 달에 하루나 이틀밖에 못 쉬어요.
저희는 12시간 교대예요. 지치긴 하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푸야오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만약 화재라도 나면 갇힌 꼴이 돼요.
모든 것이 잠든 밤에는 가족이 그리워요.
미국인을 다루는 기술이 필요해요.
미국에서 자란 사람들은 모두 과하게 자신감이 있는 상태죠.
중국 사람들은 저희를 전혀 도와주지 않아요.
저는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 통제권을 넘길까요?
미국 오하이오주에 중국 공장이 들어선다. 자동차 유리를 만드는 푸야오(FUYAO). 버려진 GM 공장이 다시 웅성거린다. 실직했던 사람들이 돌아온다. 돌아온 공장엔 새로 배워야 할 일 외에 새로 마주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중국인 경영자와 관리자 그리고 수많은 중국인 직원들. 미국 땅에 지어진 중국 공장에서 중국인 관리자와 중국인 직원들과 그리고 미국인 직원들이 일한다. 원시 시대였다면 한쪽을 완전히 말살하고 공장 부지와 이익을 차지했을 것이다. 생존 경쟁은 마찬가지지만 적이 다르다. 타국이 아닌 자본과 겨뤄야 한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미국인이나 중국인이나 마찬가지다. 가장 최소한의 공통점이자 공감대였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란 게 있기나 할까. 준비 단계부터 파열음이 끊이지 않는다. 모든 분위기가 이질감으로 꽝꽝 얼어있었고 과정 하나하나가 살얼음판이었다. 언어의 벽은 높았고 문화의 벽은 더 높았다. 역사와 환경이 달라서 생각하고 선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달랐다. 미국인 직원들과 중국인 직원들, 같은 공장 내 두 집단 사이에 거대한 용광로가 흐르고 있었다. 건널 수 있었지만 다칠 수 있었다. 특히 먼저 아메리칸 스타일로 일하던 미국인 직원들은 중국 작업 스타일에 극심한 피로도를 경험한다. 중국인 직원들과 똑같은 방식을 강요당하지는 않았지만 더 빠르고 쉬지 않아야 했다. 휴식 공간도 협소해졌다. 미국인들 눈에 중국인들의 작업 스타일은 납득하기 힘든 방향으로 경이로웠다. 주말에도 일했고 늦은 시간까지 일했으며 틈을 내지 않았고 보호장비도 없이 일했다. 참관한 미국인들은 경악한다. 미국 관리자들 앞에서 중국인 직원들은 오랫동안 준비했을 춤과 노래를 보여준다. 그들은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어버이 수령님처럼 회사와 기술을 찬양하고 있었다. 중국인 직원들 역시 타국의 낯선 환경과 사람들 사이에서 힘겨웠다. 특히 늦은 밤 떠나 온 가족을 향한 그리움에 휩싸일 때의 감정은 세상의 모든 언어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미국인 직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노조 결성을 계획한다. 합당한 권리였다. 경영진은 원하지 않는다. 도미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나를 넘어뜨리는 데 동의한다면 나머지 모두를 넘어뜨려야 하는. 다수가 회유되기 전에 경영진은 갑작스러운 임금인상과 몇몇 복지 혜택을 카드로 내민다. 다수가 흔들린다. 노조 결성 여부가 투표로 결정되어야 했고 다수결이 원하지 않는 쪽으로 투표한다. 노동자의 권리, 공식적인 의견 전달, 모두 중요했지만 가뜩이나 기존보다 적은 임금으로 힘겨운 상황에 조금이라도 더 받는 시급이 중요했다. 자본의 손을 들어준 게 아니라 당장의 생존을 택했을 뿐이다.(결과적으로 그게 그거지만) 노조 결성이 잠정적으로 일단락된 상황에서 경영진은 숙청 작업을 진행한다. 노조 결성을 주도했거나 강한 불만을 표출했던 미국인 직원들을 '정리' 한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하거나 두 사람이 겨우 하던 일을 혼자 맡기게 하여 고립시킨다. 악질적이었고 해고 전문 회사의 손에 맡겨졌다. 직원들의 임금은 오르지 않았지만 해고 전문 회사는 많은 돈을 받고 사라졌다. 푸야오 이런 경영 방식은 뉴스에 오르내렸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새로운 환경을 만든 사람들은 참여자들이 새로운 룰을 지켜주길 바란다. 대가를 지불할 테니 많은 걸 받아들여 달라고 설득한다. 설득의 언어를 쓰며 협박하고 압박한다. 어떤 중국인 관리자는 나는 이 미국인 직원과 이렇게 겉으로 친하게 지내요 라며 작업장에서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미국인 직원을 해고할 거예요 라고 배시시 웃는다. 균형은 없다. 푸야오의 시스템은 중국식 경영 방식이 지닌 비인간적인 면모를 그대로 가져온다. 그들 나라에서는 당연했겠지만 미국과 미국인들 눈에는 횡포였다. 하지만 미국인 직원들은 대항할 힘이 없었다. 잘리지 않기 위해 순응해야 했다. 회사에서 잘리면 식구들과 굶어야 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으니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는 중국 기업을 향한 미국의 두려움을 보여준다. 경쟁력을 잃은 많은 산업들이 중국 공장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고 그 내부를 미국인 직원들로 채우고 있다. 이건 국가 간의 갈등이 아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 갈등이다. 자본가는 국적이 없다. 노동자들은 일을 마치고 부모가 가르쳐준 언어로 대화하는 집으로 돌아온다. 달라진 노동 환경이 다수의 노동자 가정을 더 옥죄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자본가들이 악수할 때 미국인 노동자들과 중국인 노동자들은 그럴 수 없다. 자본가들이 원하는 건 소통이 아니다. 노조가 아니다. 생산 속도, 생산량, 매출이다. 인간은 기계를 돌리기 위해 필요하다. 자동화가 늘어나 이 또한 줄어들고 있다. 중국인 경영진의 아메리칸 팩토리는 더 많아질 것이다. 아메리칸드림은 비례하지 않을 것이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