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권 May 14. 2021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을 듣다가

김선영 배우, 박주현 배우, 오정세 배우, 홍경 배우가 참 애틋했다

사람들은 살면서 모두 연기를 한다. 타인(또는 타자화시킨 자신)에게 맞춘다. 자신을 목적이나 필요에 의해 보여준다. 자신이 연기하기 때문에 타인의 연기도 재밌어한다. 자신이 보이니까.  잘하는 사람을 보면 넋을 잃기도 한다. 대리 경험 대리 만족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타인의 연기는 오래 깊이 남는다. 예술이라 칭하기도 한다. 잊지 못할 기억이 되어 각인된다. 연기라는  인식하면서도 '가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감정 반응은 진짜였으니까. 타인의 연기를 보는 것은 진짜 가짜를 판독하는 자리가 아니다.  안에 어떤 내가 들어있는지 탐색하는 시간이라 여기는 것에  가깝다. 내가 잊고 지내던 내가 모르던 또는 남들에게 저렇게 보일  있는 나의 연기, 표정, 실루엣, 동선을 재능과 트레이닝, 자본과 각본, 전문 인력이 갖춰진  안에서 펼쳐지는 타인의 연기를 통해 확인한다. 전문 연기자들은 다수의 감정을 대표, 대리, 상징하는 자리에 있게 된다. 개인이 아닌 캐릭터지만 개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도 있다. 시상식 수상 소감을 말할 때다.


57회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을 눈여겨보았다. 김선영 배우, 박주현 배우, 오정세 배우, 홍경 배우가 참 애틋했다. 시상식은 부끄러운 자리다. 명예와 감사로 감쌀 수 있지만 넓은 공간에서 갑자기(!) 이름이 불리어 후다닥 나가서 트로피와 꽃을 양 손에 들고 마이크 앞에서 뭔가를 말한다는 건 보는 건 재밌지만 당사자에겐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아무 생각이 안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긴장과 떨림 속에서 각 수상자들은 프레임 바깥의 모습을 드러낸다. 연기자 누구 캐릭터 누구보다 그냥 일반인 누구의 표정과 상태를 드러낸다. 수많은 기억과 거기에 얽힌 감정, 또 경쟁을 뚫고 단 1명이 되었다는 희열감으로 모든 동작이 덜컥거린다. 아무리 빨리 계산해도 다음 동작과 말이 제대로인지 확인할 겨를이 없다. 오정세 배우처럼 프로페셔널한 의연함으로 경탄을 자아낼 수도 있지만 김선영 배우, 박주현 배우, 홍경 배우처럼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오정세 배우처럼 동료를 칭찬하는 기술을 지닌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조연을 정의하고 주연을 재해석하다가 상대 배우(김수현)를 자연스럽게 극찬한다. 넘침도 자의식도 없다. 공을 넘기고 손에 든 어느 것도 잃지 않는다. 김선영 배우는 아이처럼 신나 하다가 같이 일한 동생과 언니를 언급하며 울먹거린다. 감정의 온도를 완전히 바꾼다. 코믹으로 시작해 순식간에 울음 폭탄으로 뒤덮는다. 여러 작품에서 김선영 배우 연기의 온갖 스펙트럼을 보고 주변의 모든 시선과 호흡을 집어삼키는 마력에 경탄하곤 했었다. 이번 수상소감에서도 칼춤을 추고 있었다. 보는 이들은 자지러지고 본인은 피 한 방울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박주현 배우는 인간 수업(넷플릭스)의 본체였다. 수상소감에서 가족을 언급하다가 숨을 삼킨다. 특정한 자리에서 떠오르는 가족의 따스함이 눈망울과 뺨을 붉힌다. 교과서 같지만 알다시피 이런 가족 별로 없다. 홍경 배우 작품 결백을 아직 안 봤다. 대신 수상소감을 통해 그가 촬영장이 아닌 곳에서 어떤 사람인지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상 소감을 듣다가 작품이 궁금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홍경 배우의 수상 소감 때문에 서둘러 결백을 보고 싶다.


저 한마디가 마이크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억과 이미지, 사람과 말들의 치열한 선별 과정이 있었을까. 숨 막히는 밀도 안에서 겨우 나온 말들은 얼마나 희귀할까. 내 삶에서 누군가에게 들킬 일 없는 그늘과 눈물, 각본 없는 감정들이 전문 연기자들의 수상소감 안에 녹아 있다. 그들은 마이크와 카메라 앞에서 원본과는 다른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들이지만 갈등의 정점에 달한 영화의 어떤 장면이 그렇듯, 수상소감에서 보이는 어떤 표정과 말들은 간절히 믿고 싶기도 하다. 같이 울먹거리며 다시 돌려 본다.






이전 04화 여동생 결혼식 축사 "둘의 선택이 중심이 되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