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배움이 있을 적에
제목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함축이라고 들었나 보다.
마치 '팔만대장경'처럼,
정보와 속성이 떳떳하게 드러나 있어야 한다고,
그러면서도 운치나 위트 같은 것도 있어야 하고.
서로 다른 세계들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갖는다.
세계관이 다르고 캐릭터가 다르며
던전과 미션이 다르고 보스몹이 다르니까.
같은 컬러로 이름을 지을 수 없다.
"의외성을 두어 차별화시키기로 했다는' 표현은
마케팅 지식의 결이 다른 클라이언트를 위한
제안서에나 적는 말.
한때는 글의 제목에 글의 운명이
깃들었다고 여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행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보이지 않는 손 같기도 하다.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아서 같기도 하다 라고
자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농담과 귓속말로 가득한
책을 툭 내기도 싶긴 한데
한때는 트위터가 그랬고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더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고
더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들이 많으며
그것들이 딱히 더 공익적이지도 않다.
어떤 세계든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해석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러하듯.
이런 시기에 새로운 질감의 글을
발견하는 일은 귀하디 귀하다.
여전히 쓰는 사람은 많고
다르게 쓰는 사람은 드물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기 이야기를 다르게 쓰는 사람은 드물다.
늘 다른 걸 원하고 새로운 걸 퍼뜨리며
자신은 생산하지 못하는 일은 넘치고
세상 모두에게 글을 쓰는 일이
세상의 중심은 아니어서
(대부분) 몇 자 떠올리다가 사진을 올리고
휴대폰을 충전기 위에 놓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변하고 사라지고 멀어져 가는 것들 사이에서
도로시를 떠올린다.
도로시를 낳고 키우는 아내를 떠올린다.
우리가 바꿔 놓은 것들을 그려본다.
집에 돌아가면 늘
집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며
집에 있지 않은 시간을 채운다.
어쩌면 오늘이 요즘이 지금이
가장 평온한 날 중 하루라고 여긴다.
균형을 잡으려 위태로운 줄타기의 느낌이 적고
잊힌 것들에 대해 복기하며
상실한 것들 중 아까운 것들을 뒤적거리는
이런 시간을, 쓰지 않았으면 몰랐을
이런 시간에 대하여,
또는 망각한 것들을 망각한
시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