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혁 감독. 오징어 게임
사람 안 바뀐다 라는 생각은 잘 안 바뀐다. 이 생각의 주체인 사람이 잘 안 바뀌어서인지, 절대 안 바뀌는 사람에 대한 실시간 경험치 때문인지 제각각이다. 안 바뀌는 사람에 대한 안 바뀌는 생각을 안 바뀌는 사람들이 견고화 시킨다. 고정관념을 지나 진리와 정의가 되어간다. 부정적인 사람들이 주로 안 바뀌고, 만에 하나 바뀐 사람들은 부정적이거나 결국 부정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이건 바뀌라는 말인가 바뀌지 말라는 말인가. 타인이 제시하는 의견에 의해 당사자의 삶은 어디까지 바뀔 수 있나. 이게 추후 닥칠지 모를 나쁜 결과에 대한 변명의 여지가 되나. 타인의 의견에 강제성이 있나. 상황이 유죄라고 선택과 실행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나. 실수는 어디까지 허용되나. 어디까지 면책을 부여받나. 내 실수를 되돌릴 수 있게 해 준다면 타인의 실수에도 같은 관용을 베풀 수 있나. 나의 불운은 내 모든 잘못된 선택을 설득할 만큼 강력한가. 잘못 태어났나. 잘못 살았으니 잘못 죽을 수도 있나. 어디까지 타인의 제안에 삶을 의탁할 수 있나. 경마장의 말이 될 수 있나. 재갈을 물고 눈을 가리고 터질듯한 동공과 폐, 근육을 부여잡고 헐떡거리며 죽을 때까지 달리다 죽을 수 있나. 난 그냥 한몫 잡아서 그동안 불공정했던 삶 좀 보상받고 여생을 가족과 지인들 오손도손 챙기며 보내려고 했는데... 그게 경마장 말에게 가당키니 한 옵션인가. 고삐를 쥔 것도 깃발을 쥔 것도 당근을 쥔 것도 내가 아닌데? 인생은 게임이라는 말은 얼마나 달콤한가. 하지만 경마장 말이 위너가 될 수 있나. 말이 되기 전에 말이 되라고 제안받은 후에 경마에 낄지 말지 고민할 때 그걸 간과했나. 말이 되기로 한 순간, 다신 두 발로 걸을 수 없을 거라고. 아무도 일러주지 않아서 아이고 어쩌나 나는 이걸 몰랐네... 이럴 건가. 말에게 456억 원은 필요 없다고. 말은 그냥 달리다 뒤지는 거라고. 야이 개X끼들아 내 인생이 아무리 X 같아 보였어도 이런 건 미리 알려줬어야지. 울면 뭐하나 말이 울부짖는 소리로 들려서 채찍만 더 맞을 텐데. 어차피 신체 포기당한 인생, 사람 대신 말이 잠깐 되었다가 돈다발 들고 갱생할 줄 알았는데 게임 주최 측이 너무 가혹하고 가학적이라 원망이 드나. 후회가 되나. 다시 돌아가고 싶나. 갚을 수 없는 빚만 가득한 현실로? 말에서 다시 사람이 되어 산 채로 안구를 적출당하고 싶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말로 뛰다가 죽는 게 나을 거 같나. 어차피 세상이 내 편인 적도 돈이 내 것인 적도 없었나. 고학력 출신, 평생 고생만 한 노모, 덕 본 적 없는 처자식, 웃어 본 기억 없던 인간의 삶, 달리다 죽는 말 보다 나은 삶을 산 적 있었나. 이 삶을 다시 감당할 수 있나. 장기 없이는 살아도 돈 없이 살 수 있나. 이렇게 고민만 하다 뭉개진 시간 속에서 지인과 주변 폐허로 만들고 버러지처럼 꿈틀대는 인생이... 나 한놈이 아니었다니. 죽는 게 이렇게 치열하다니. 제 발로 들어온 자살 응모자들이 이토록 차고 넘치다니. 종이 울리면 다시 뛰고 죽도록 살다가 다 죽이고 그렇게 살아남아 다시 말 달리고. 몇 번 이겨보니까 영웅이 된 거 같나. 주변을 돌아보게 되고 인간미가 재생되나. 이제 뭔가 할 수 있을 거 같나. 다 죽이고 다 죽고 나니 뭐라도 된 거 같나. 깔깔깔. 사람 안 바뀐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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