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소재인 글쓰기는 최후의 글쓰기, 소재를 찾지 못했다는 선언과 같다. 전체가 변호이자 변명, 방어이자 숙인 고개다. 애초 읽는 이들에게 어떤 영감이나 지식, 정보도 줄 수 없었으나 이 글은 거기서 한발 더 뒷걸음질을 친다. 쭈뼛거린다. 까발린다. 부끄러움을 전시한다. 고백을 빙자하며 고문을 가한다.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예상을 기어이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의문조차 차단한다. 대체 왜? 아니 성립할 수 없다. 고개를 땅 속 깊이 처박고 쓰는 자는 모든 힘을 다해 자간과 행간 사이에 숨을 곳을 찾는다. 모조리 실패한다. 울지도 못한다. 종이가 젖으면 알아볼 수 없으니까. 방패도 방조제도 될 수 없다. 글쓰기가 소재인 글쓰기는 (그것이 디지털 상이더라도) 종이가 지닌 물성의 연약함을 고스란히 이어받는다. 구겨지고 팔랑거리고 흩날리다가 찢기고 불타기도 한다. 지면이 훼손되면 무늬인지 얼룩인지 몰랐던 텍스트는 같이 증발한다. 존재를 잃는다. 기억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없던 것이 된다. 시도조차 파악되지 못하는.
굳이 이유가 필요하다면 겸연쩍어하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읊조릴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시도는 그러니까 벽을 보며 혼자 휘두르는 탁구 치기, 혼자 마이크를 잡고 가사를 더듬거리며 부르는 노래방, 혼자 하는 팔다리 운동, 그러니까 이런 시도는 그러니까 먼 미래의 건강이나 소소한 즐거움, 유연성 향상 같은 아주 얕고 옅은 긍정적인 자기중심적 목적성을 지닌 거라고. 다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이기적이지만 타인의 개입과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으며 굳이 단어로 이야기하며 트레이닝 같은 거라고. 어떤 비가시적 결과를 기대하며 반복하는 소박한 미완의 행위.
하루의 많은 시간을 오늘은 어떤 글을 쓰지에 대한 골몰함보다, 일단 글을 쓰긴 쓸 건데 뭘 쓰지... 로 보내는 (나 같은) 이들에게 글쓰기를 소재로 한 글쓰기는...... 우연히 하게 된 심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잠시 멈추고 방향을 점검하며 에너지를 추스르는. 이렇게 길 필요도 없었지만 가끔은 필요하다. 단기적인 어떤 이익조차 의도하지 않는, 무익하고 무해한 행위를 나라는 주체에 의해, 밀고 나가고 싶은 것이다. 쓴다는 행위가 좋거나 쓰고 있는 자신으로 자각되고 싶어서. 나의 일부가 이렇게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중요하고 필요해서. 어떤 이들에겐. 또는 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