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도 같은 회사 내 관계들
어느 날부터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늘 같은 시간에 함께 나가 같이 밥을 먹었다. 늘 같은 공간에서 늘 같은 사건을 겪었다. 그래서 늘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었고 같은 풍경을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같은 기분이었다. 같은 비극과 같은 희극 속에서 같이 지냈다. 같이 웃었고 같이 분노했다. 어느 날부터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밥을 먹어야 할 때 그들은 가까운 곳에 없다. 나는 그렇게 회사에서 나이를 먹었다.
특정 인물에 대한 경험과 해석이 부정적으로 일치하는 순간, 무리의 공동체 의식은 극에 달한다. 화상을 입은 듯한 모멸감과 정신적 통증은 같은 공감대의 무리 안에서 놀랍게도 치유된다. 있었던 일이 기억마저 날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웃을 수 있다. 이건 결코 사소하지 않다. 덕분에 우린 고층 빌딩에서 몸을 던지지 않았다. 달리는 차에 몸을 던지지 않았다. 다량의 수면제를 삼키며 깨지 않는 잠을 청하지 않았고 다행히 아무도 죽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서로의 곁을 비우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익숙한 실루엣으로 채워졌던 책상들이 비워지고 낯선 얼굴과 목소리들이 공간과 대기를 채울 때, 순식간에 우리의 사건들이 과거의 일들이 되었을 때, 이런 이야기들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게 되었을 때, 실감할 수 있었다. 나만 남아 이곳에서 나이 들고 있구나.
회사는 조직은 개인의 감성에 장단을 맞출 겨를이 없다. 동료들이 사라진다고 하여 나를 우울증 관리 센터에 데려다 놓을 것도 아니다. 조직개편은 과거의 흔적을 빠르게 지운다. 사라진 동료들은 점점 기억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나만 아는 사람들이 된다. 가끔 점심시간이나 커피타임의 대화 소재로 등장한다. 그뿐이다. 철저히 과거가 된다. 과거를 이야기할수록 나는 과거와 가까운 거리의 사람이 되고 이러한 인상은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 현재의 공간, 현재의 일, 현재의 사람들로부터 아득한 거리감만 조성한다. 과거에 머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날 선 감각으로 현재의 시장 흐름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가장 진보된 인식을 심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이런 인물은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입을 닫는다. 방금 전 인스타그램에서 본 가장 핫한 콘텐츠를 이야기한다. 지금 곁에 있는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동료들은 대다수 나이가 적다. 이들과의 경험은 과거와 철저히 분리된다. 내가 한때 너희가 겪은 업무 내 모든 에피소드와 이를 통해 얻는 모든 희로애락을 먼저 겪은 사람이라는 미친 소리는 생각조차 경계한다. 그들은 내가 아니고 나의 시간을 겪지 않으며 나의 감정과 다르다. 내가 먼저 겪어 알고 있는 걸 그들이 난처해졌을 때 편하게 알려줄 수 있지만 이를 권력처럼 다루지 않는다. 꼰대, 한남, 관종이 될 가능성을 최대한 모조리 차단하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적게는 한두 살 많게는 열 살 이상 차이나는 이들에게 ‘윗사람’으로 보이려는 걸 철저히 경계한다. 나는 그런 벽을 세우고 싶지 않다. 시간에 녹슬어 비둘기 떼로 둘러싸인 무명의 동상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철저히 말과 생각이 통하는 사람으로 기능하고 싶다. 오장육부를 까뒤집어서 바닥의 정서를 나누는 관계가 아닌, 다듬어진 태도와 선을 넘지 않는 매너로 새로운 결의 관계를 운영하고 싶다. 나는 과거의 동력으로만 현재의 관계를 이끄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더 많은 커피비와 점심비가 들더라도 괜찮다. 새로운 관계에는 새로운 비용이 필요하다.
이런 걸 최소한으로 삼고 균형을 잃지 않으려 매번 다잡는다. 업무의 시작과 매듭은 어떤 식으로든 가능하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며 완결되느냐가 중요해지면 관계의 밀도를 무시할 수 없다. 과거의 사람들과 과거의 상황에 가장 최적화된 조건을 맞춰가며 일을 해왔고 현재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상황을 맞으며 새로운 대응책과 태도로 운영해야 한다. 일의 성과가 전부라면 그 성과 안에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관리능력도 포함된다. 모두를 포용하거나 모든 의견을 수용하거나 모든 요구사항에 끄덕거릴 필요 없다. 새로운 변수가 생기면 새로운 룰을 도입하고 답이 없을 경우에는 판을 옮긴다. 무엇보다 함께 하는 이들의 동의와 합의를 이끌어 낸다. 매번 심각할 수는 없다. 사라진 사람들과도 그렇게 일했듯 새로운 사람들과도 일이 지닌 무게를 쉽게 놓지 않는다. 내가 여러 번 먼저 겪었고 누군가 처음이거나 낯설다면 최대한 어렵지 않도록 길을 안내하거나 같이 모색한다. 각자 일하지만 함께 나아가야 한다. 전에도 그랬듯, 지금도 중요하다.
사막과도 같은 회사 내 관계들. 바람에 모래언덕이 사라지면 어딘가에 새로운 모래언덕이 생겨난다. 계속 반복되고 계속 지형이 바뀌며 계속 걸어도 어쩌면 길을 잃을 수 있다. 사라진 사람들과 과거의 나침반으로 태양을 등지며 걸었다면 지금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나침반으로 별자리를 더듬으며 걷는다. 언젠가 나도 그들에게 사라진 사람이 될 것이다. 지금도 내가 그들에게 새로운 사람 중 하나이듯이. 모두가 침묵하는 사이 책상은 옮겨지고 의자는 비워지고 입사자와 퇴사자들이 같은 복도에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 모든 풍경을 관망하며 나는 나이 드는 중이다. 사라진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