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없으면 글을 못 쓰는 현상에 대하여

by 백승권






한없이 복잡하게 여겨지지만 결과는 단순하다. 영화, 드라마 등 완결된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영상 콘텐츠가 없으면 글은 쓰이지 않는다. 이건 문제는 아니다, 의아한 습관일 뿐. 반사적으로 글을 쓴다. 감상한 영화의 절반 이상을 기록으로 남기려 시도한다. 행위에 의미는 없다. 의미를 부여했다면 더 빨리 지쳤을 것이다. 이게 수달 수년 17년 이상 지속되면 일상의 리듬에 새겨진다.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또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스스로 각인한 룰이 된다. 써야 하는 글이 된다. 감상한 영화의 개수에 글의 개수가 비례한다.

많이 보면 많이 쓰게 된다. 그리고 글에는 개인의 시간과 경험이 가미된다. 영화 리뷰를 쓰는 일이 곧 내 시간과 기억, 경험의 일부를 옮기는 일이 된다. 전문 매체나 편집자의 의견이 오가는 지면이 아니기에 자유도가 높다. 카피라이팅, 마케팅 전략적 글쓰기 같은 현업과는 다른, 개인으로서의 내 선택과 결정으로 문장, 문단이 구축된다.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를 선택하는 이들이 목말라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타자와 계약되지 않았기에 돈이 오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야만적이고도 중독적인 면이 강하다. 영화는 하나의 동기가 된다. 룰에 길들여져 쓰지 않으면 불안한 상황에서 영화는 글을 쓸 수 있는 지적 자극과 소재, 감정적 동요와 기존과 다른 시점을 제공한다. 글쓰기가 계속된다면 영화 감상을 경유한 글쓰기도 계속될 것이다. 글을 쓰고 싶어 영화를 보려 하는 시기까지 왔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 시대의 도래는 무한 장전된 총과도 같다. 생각과 의지가 마르지 않는 이상, 글쓰기를 피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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