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의 나에 대하여

by 백승권







나의 개수를 세어본다.

엄지, 검지, 중지, 접히는 손가락이 늘어난다. 원본은 하나였을까. 이렇게 쓰는 나, 이렇게 쓰는 나의 글을 읽는 나, 이렇게 쓰는 나의 글을 읽는 나에 대해 생각하는 나, 이렇게 쓰는 나의 글을 읽는 나에 대해 생각하는 나와 또 다른 나에 대해 세어보는 나, 같은 시간을 흐르는 나를 쪼개어 보아도 이렇게나 많다. 접던 손가락을 멈춘다. 이미 한도 초과. 시야를 환기시킨다. 안으로만 파고들면 움츠러들 뿐이다. 의식하지 않아도 모든 순간 나는 나를 파고든다. 나의 내가 아닌 타인의 나를 떠올린다. 지금의 나, 오늘까지의 나, 규정된 나, 의무의 나, 당신의 나, 우리의 나, 사랑하는 사람의 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나, 타인의 나, 내가 아닌 모든 것들의 나, 내가 아니지만 나보다 더 나처럼 여기고 싶은 사람들의 나,


오늘로써 수연과 만난 지 17년 9개월 7일째다.

2000년 12월 25일 이후, 나는 불을 발견한 인류의 역사가 그러했듯 다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감상도 환상도 허상도 아닌 문자 그대로 모든 게 달라졌다. 살과 뼈와 피를 구성하고 있던 물질과 분자 구조도 재배열되었다. 진흙덩이에서 직립보행이 가능한 영장류가 되었다. 먼지가 물이 되었고 멈춰있던 정신 기관에 새로운 숨이 불어넣어졌다. 무생물이 겪을 수 없는 모든 사치, 감각적 감성적 절정에 다다랐고 자연스럽게 표현 수위도 높아졌으며 자본주의는 이를 재능으로 인정하며 대가를 지불했다. 경험은 기억이 되고, 쌓인 기억은 단어와 문장이 되었다.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생성되었고 어느덧 글로 밥을 지어먹고 있었다. 둘이 사는 집을 짓고 있었다. 삶과 시간의 모든 중심에 너를 두고 아무도 볼 수 없도록 과거의 나를 지워갔다. 더 이상 그날 이전의 내가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 경우의 수였다면 아마 지금도 여전히 진흙덩이 었거나 먼지였거나 물속에 있었을지도 모르겠지. 나의 한계가 너의 한계가 되지 않도록, 우리의 한계가 되지 않도록 나는 더 달라져야 하고 더 새로워져야 하며 더 당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날 이후의 모든 시도가 전부 너를 위한 결정이라 여기며 나를 위해 행해졌다는 것을 안다. 남은 생 내내 뼈아픈 고해와 감정적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 많은 시행착오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떼어내어야 한다면 부서질 것이다. 바라보는 법과 생각하는 법, 글로 표현한다면 시계를 부수고 행성의 길이만큼 이어지게 될 수많고 많은 고마운 순간들, 당신을 만난 후 새로 배웠다. 모든 것이 불온하고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온전하고 확실한, 유일한 기준이 되어준 사람. 이제 여기서 다시 쓴다. 나와 우리와 시간과 삶에 대하여.


오늘로써 아랑이와 만난 지 2년 9개월 7일째.

우리 딸, 2015년 9월 4일에 너를 만났어. 온몸에 피와 물을 뒤집어쓴 너를 그날 처음 안았어.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몸속에서 먹고 숨 쉬고 자라다가 그날 우리와 처음 눈과 눈을 마주쳤어. 아무 준비도 없이 너를 만날 수 없어서 -너는 그래선 안 되는 존재니까- 공부했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며 같이 할 것들과 조심해야 할 것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그리고 닥쳐왔다. 벼락이 떨어지듯 너의 작은 몸과 큰 소리가 우리 삶을 덮쳤어. 우린 네가 계속 숨을 쉬고 먹고 움직이고 말을 하도록 밤을 지새우고 병원을 들락거렸어. 새벽에 구급차를 부르고 급하게 응급실로 뛰어가기도 했어. 너는 인형이 아니었고 강아지가 아니었으며 전설 속의 괴생명체가 아니었어. 너는 아랑이었고 우리의 생명이었으며 세상의 전부이자 너 자체였어. 태어나기 전부터 존중했고 지금도 너의 말 하나라도 더 놓치지 않으려고 경청하고 있어. 대답하고 같이 뛰고 안아주고 웃고 울고 이불을 덮어주고 사랑한다 매일 매시간 매초 말해주고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사고를 막으려 다급히 소리치고 있어. 아랑이 너는 요즘 우리를 매일 혼내고 있잖아. 지는 밥상을 다 엎으려고 하면서도 나에게 시끄럽다고 밥 먹을 때는 조용히 하는 거라고 훈계하잖아. 갑자기 아빠가 밉다고 그러고 왜냐고 물으니 사랑하니까 미워하는 거야 라고 말하고 있잖아. 자다가 웃음을 터뜨리고 울다가 엄마 아빠 이름을 부르짖기도 하잖아. 아랑이 네가 아직도 점의 점보다 작은 존재였다는 것을 늘 생각해. 내 아내이자 네 엄마와 이야기하며 신기해하고 있어. 너는 우리의 아랑이지만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새로운 개인으로서의 백아랑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있어. 아랑이 네가 좋아하는 크림치즈와 생크림 케이크와 요거트와 작두콩 끓인 물을 먹을 때 얼마나 행복한 미소를 짓는지 알아. 아랑이가 엄마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고 안아주고 뽀뽀해주는지도 너무 잘 알아. 너는 우리로부터 왔지만 어쩌면 더 먼 곳에서 예정되어 우리를 통해 이 곳에 내려온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어. 네가 우리의 아랑이이듯 우리는 너의 엄마 아빠이자 너로 인해 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깨닫게 된 아주 운 좋은 사람들이야. 너로 인해 나의 수연을 더 사랑하게 되었어. 네가 얼마나 우릴 사랑하고 우리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계속 확인하도록 하자. 네 엄마 사진으로 1000개를 넘어가던 인스타그램 사진과 영상의 개수가 네가 우리 곁으로 온 이후로 8500개가 넘어가고 있어. 너와 너의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을 적은 글로 상도 받게 되었어. 너에게 주고 싶은 게 많아서 우린 매주 작은 여행을 떠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뛰고 소리 지르고 온몸의 기와 힘이 빠져나갈 때까지 함께하고 있어. 너와 함께라서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고 내일은 오늘보다 분명 행복한 날이 될 거야. 우리의 아랑이가 되어주어서 고마워. 우리도 너의 우리가 될게.


그들과 영원히 떨어지고 싶지 않은 나. 나에 대하여. 하나, 둘, 다시 나의 개수를 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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