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애벌레 이야기

by 백승권
The Very Hungry Caterpillar by Eric Carle






고요한 어느 숲 속 , 애벌레 A가 있었다. 애벌레 A는 나무껍질 틈에 들어가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매일 그랬듯 따스하고 포근한 잠이었다. 싱싱한 나뭇잎을 갉아먹는 꿈을 꾸던 애벌레 A는 몸속 어딘가 깊숙이 엄청난 이물감을 느꼈다. 꿈인가. 너무 생생하고도 고통스러웠다. 애벌레 A의 몸통에는 실제로 거대한 침이 박히고 있었다. 대체 이건 뭐지. 거대한 침을 따라가 보면 나무껍질 바깥의 벌 B가 있었다. 벌 B는 몸통을 구부리고 다리를 벌려 자세를 잡은 채 몸통 끝의 침을 박고 있었다. 침은 나무껍질을 뚫고 애벌레 A의 몸통에 박혔다. 애벌레 A는 나뭇잎을 뱉으며 현실로 돌아왔고 눈을 번쩍 뜨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어서 침을 빼지 못해? 너무 아프다고! 참사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애벌레 A의 몸 깊숙이 박힌 침 끝에서 조그만 알갱이들이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벌 B의 알이었다. 알들은 애벌레 A의 살 속에서 금세 애벌레 B1, 애벌레 B2, 애벌레 B3…가 되었고 작은 눈과 작은 더듬이, 작은 몸통과 작은 이빨을 갖추게 되었다. 벌 B로부터 막 태어난 애벌레 B들은 갑작스러운 탄생과 성장으로 인해 급격한 허기를 느꼈다. 말랑말랑한 애벌레 A의 몸속은 온통 단백질 천지였고 애벌레 B들은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눈 앞의 살덩이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애벌레 A는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더 이상 외마디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대체 내게 왜 이러냐며 벌 B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애벌레 A의 눈엔 부들부들 떨리는 벌 B의 다리만 보일 뿐이었다. 애벌레 A의 몸은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몸속의 애벌레 B들은 이미 수십 마리에 육박하고 있었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애벌레 A의 몸속을 파먹고 있었다. 이따금 애벌레 A의 단백질로 오인하고 서로의 몸을 뜯어먹는 애벌레 B들도 있었다. 애벌레 A는 투명한 껍질만 남은 채 텅 비었고 애벌레 B들은 다 채워지지 않은 허기로 나무껍질 위로 올라갔다.


나무껍질 위엔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지탱하고 있는 벌 B가 있었다. 오구오구 귀여운 내 새끼들… 벌 B는 뭉클해졌고 800개의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하지만 감동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허기진 애벌레 B들이 벌 B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고 있었다. 다리, 날개, 더듬이, 몸통 할 거 없이 야금야금 먹어 치웠다. 벌 B는 자신을 먹어치우는 애벌레 B들에 둘러싸여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제야 허기를 채운 애벌레 B들의 등에 날개가 돋기 시작했다. 긴 다리 여섯 개와 두 개의 더듬이가 근사하게 뻗었다. 애벌레 B들은 벌 C가 되어 다른 나무들을 향해 흩어졌다. 다른 나무껍질 밑에서 잠든 다른 애벌레들을 찾아 날아가고 있었다. 부웅부웅, 고요한 숲 속에 벌 C들의 날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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