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감독. 뜨거운 피
지방 깡패 희수(정우)는 뭐 없다. 도박빚은 5천만 원 있다. 안 갚으면 안구와 콩팥을 대신 줘야 할지도 모른다. 가짜 고춧가루 팔아서 돈 번 노인 밑에서 사람 패고 죽이며 나이 들었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한데 나중에 자기 때문에 아들이 죽어 떠난다. 친구가... 자길 30년 친구라고 주장하는 동종업계 깡패가 있는데 얘를 죽여야 우리 편이 사는데 그걸 못해서 얘가 우리 편을 죽였다. 희수는 화가 많이 났다. 희수는 이 분노를 법으로 처리하는 법을 몰랐고 죽였다. 관련된 모두를. 자기도 이렇게 단숨에 여럿을 죽이게 될 줄은 몰랐지. 희수는 인터폴이 긴급 수배한 월드클래스 프로페셔널 어쌔신이 아니었다. 희수는 자기 이성과 감정을 제대로 작동시킬 줄 몰랐고 결정적인 상황에 늘 망설이다가 주변이 희생되었으며 자신에겐 남는 게 없었고 무엇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걸 위해 누굴 만나 어떻게 처신하고 나아가야 할지 몰랐다. 모르면 아는 척이라도 하며 대강 위선을 떨어야 입에 풀칠하며 살 텐데 희수는 그저 남의 도구로만 쓰이다가 정작 자신을 자신의 도구로 쓰는 법은 몰라 매번 속고 당하고 뒤늦게 후회하고 더럽게 수습했다. 내 나이 마흔인데 뭐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아빠뻘 되는 남자한테 소리 지르고 나중에 마지막 숨을 끊는다. 희수는 겉멋이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팔다리 멀쩡하고 숨은 붙어서 헛짓거리하면서 살긴 사는데 살면 살수록 피와 피해만 늘어간다. 동네 형 노릇하면서 평생 본 애들한테 인사받으며 나이 먹으면 술기운에 뭐 가끔은 나 뭐 되나 보다 싶을 때도 있겠지. 희수 같은 인간들이 여기저기 공존할 것이다. 저렇게 평범한 척 남 피해만 주고 주변 다 폭파시키는. 고민을 외면하고 순간을 방치하면 저렇게 되겠지, 누구라도. 나도, 조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