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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l 25. 2022

킬링 카인드, 과거와 흉터에 대하여

마틴 캠벨 감독. 킬링 카인드: 킬러의 수제자

우리의 과거는

우리가 떠나온 곳에 남아 있지 않아.

흉터는 누구나 있어. 그걸 오래 바라보면

다쳤던 기억만 떠오를 뿐이야.



마틴 캠벨. 감독 이름만 믿고 봤다. 마이클 키튼의 렘브란트가 없었다면 유치한 한글 부제를 용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 킬러들에겐 사연이 있고 안나(매기 ) 그렇다. 무디(사무엘 잭슨) 덕에 살았고 킬러로 자라 타인들을 죽였다. 안나와 무디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 동종업계 동료, 유사 부녀 지간 정도로 보인다. 스케일이 남다른 선물도 주고받고 대화도 많이 나눈다. 총격 살인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 안나를 불쌍해서 거뒀다기보다는 인간병기로  키워서 노후 대비로 삼으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리뷰는 예정에 없었다. 예상 가능한 전개와 스토리를 다른 배우와 다른 감독으로 양산하는 킬러 영화에 대한 리뷰는 예정에 없었다.  대사가 아니었다면 결코 쓰지 않았을 것이다.  대사는 세계 어떤 감독 어떤 배우가 말해도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상황과 맥락이 유기적이라는 전제 하에.


나쁜 기억에 대한 보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조언은 말이 쉽지 듣는 당사자에겐 효력이 미약할 수밖에 없다. 흉터를 오래 바라보는 이유는 흉터가 남았기 때문이고 흉터에 대한 통증의 기억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걸 일방적으로 멀리하라는 말은 아무 존재감이 없다. 과거는 무의미하고 흉터의 기억은 되살려봤자 너만 손해다라는 말은 정말 지금 하는 어떤 습관도 흔들어 놓지 못한다. 조언은 위험하다. 조언은 조언을 하는 이에게 스스로 지위를 부여하는 듯한 착시 안경을 쓰게 하고 조언을 듣는 이에겐 현재 시간이 억겁의 굴레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저주에 갇히게 만든다. 이게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라는 말은 얼마나 순식간에 공기 중으로 사라지나. 무디가 안나에게 던지는 저 대사는 이후 무디의 어떤 선택도 방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 나는 잠시 느려지더니 멈추고 있었다. 과거, 흉터, 다쳤던 기억. 오래 바라보는 습관.


종종 과거의 나쁜 기억들을 떠올린다. 한때는 이런 반복이 얼마나 인생을 갈아먹고 갉아먹나 한탄한 적도 많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한탄하지 않는다. 나쁜 기억들을 떠올리는 일을 멈추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번 재생되는 나쁜 기억 속에서 나는 다른 대사들을 하기도 하고 상대방을 도륙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 변화도 없다. 모든 일은 과거가 되었고 현재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 그때를 여전히 기억하는 내가 살아있을 뿐. 이걸 흉터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자주 바라봤던 건 사실이다. 무디의 저 대사는 내게 던진 대사 같았다. 나는 킬러가 아니라서 과거를 일부 훼손시킨 상대를 처리하고 사체를 말끔히 숨길 수도 없는데. 나쁜 기억이 없다면, 지울 수 있자면 좋은 기억을 정하는 기준은 대체 뭘까. 사진. 내가 찍거나 보관하는 사진에 담긴 사람들이 나의 좋은 기억을 정의하는 이들이자 기준이다. 안나가 무디의 조언을 실행하려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물론 해시태그를 암살, 원샷원킬, 청부살인 이런 걸 달 수는 없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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