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기록되지 않는다

by 백승권

이것은 공포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공포는 기록되지 않는다. 한때 공포에게 형태와 질감이 있다고 믿을 때가 있었다. 유형의 이미지가 심연을 압도하며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고. 지금은 다르다. 그동안의 공포는 미디어에 의해 일방적으로 학습된 게 아닐까, 눈에 보이는 감당할만한 이미지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감당할 수 없는 기분에 공포라는 이름을 달아준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더더욱 지금 기록되는 건 공포가 아니다. 경험이 남긴 잔상일 수 있겠지만 당시의 공포는 아니다. 텍스트로 옮겨질 수 있다면 그것은 공포가 아니다. 공포가 극도의 어떤 상태를 지칭한다면 비슷하겠지만 슬픔과 두려움이 섞인 고통과 어둠이라면 비슷하겠지만 그것은 공포가 아니다. 자꾸 부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그저 그때의 그림자와 상흔에 대해 혼잣말처럼 증언할 뿐이다. 그 시간을 경험한 후 공포에 대한 정의는 완전히 새로워졌다. 최초의 실체를 만난다면 그것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숨통을 틀어막고 어떤 것도 예상하고 싶지 않게 만들고 어떤 가능성도 보이지 않게 만든다면 그것은 기존의 정의가 무엇이든 기존의 단어로 옮겨질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주변부를 맴돌 뿐이다. 그때는 지나갔고 되돌아가는 길을 완전히 끊어놓고 싶지만 기억은 그렇게 작동되지 않는다. 다만 그때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때의 경험 이후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공포를 경험했다고 믿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의 공포를 누구에게도 스스로에게조차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를 다시 떠올리려는 모든 시도를 차단하려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 우리는 어두운 방에서 밤새도록 떨고 있었다. 그치지 않는 기계의 삐삐 거리는 울림과 산소마스크와 산소호스와 산소통과 뒤바뀌는 숫자와 수치를 다시 올리려는 반복과 침묵과 어둠과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 속에서 떨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공포와 싸우고 있었고 최초의 공포와 싸우고 있었고 공동의 공포와 싸우고 있었고 도망치고 싶었고 그만두고 싶었고 살고 싶었고 살고 싶었고 살고 싶었다. 살고 싶어서 너무 무섭고 두렵고 울고 싶었고 심장이 쪼개져서 따로 뛰고 있는 것 같았고 뇌가 터져버릴 것 같았고 안면이 찢기는 것 같았고 앉아도 누워도 눈 떠도 감아도 깨어도 깨지 않아도 모든 것이 뒤흔들리고 전혀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저 살려달라는 간절함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 위에 뒤덮여 떨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울음 같았다. 의사표현을 배우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울음 같았다. 우는 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최후의 의사표현 같았다. 소리 내지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시간의 속도를 가늠하지 못하고 해가 뜨는지 지는지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하고 그저 살려달라고 아무 말 없이 그저 살려달라고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공포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이렇게 표현한들 당시의 공포와 두려움을 한 줌도 제대로 옮기지 못한다. 들리지 않는 절규가 공간을 채우는 모든 어둠의 입자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그 낮을 그 밤을 그때 본 것과 낮고 깊고 두려웠던 시간을 약해질 수도 강해질 수도 무력해질 수도 어떤 시도에 대한 의지도 온통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그때를 이렇게 옮겨 적은들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어떤 음악도 그림도 글도 그때의 기분을 옮길 수 없다. 그저 애써 괜찮은 척 평생 거짓말을 해야 하겠지. 지나간들 나는 그때 그곳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지금 여기 이곳에서 이 글을 쓴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돌아가지 않기 위해 어떤 거짓말도 기꺼이 감수할 것이다. 이것은 공포의 기록이 아니다. 공포와 직면하면 알게 된다. 이건 결코 기록될 수 없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