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 감독. 파이프라인
유하 감독의 영화 중 비열한 거리가 좋은 건 엔딩 때문이다.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살려고 같이 발버둥 치던 이들에게 당하기 때문에. 지독하고 징그럽게 비정한 결론이었다. 힘없는 벌레들은 그 위의 벌레들에게 먹힌다는 현실을 너무 가혹하고 진절머리 나게 묘사하고 있었다. 남의 집에서 벌거벗고 채무자 협박하고 보스가 싫어하는 사람 죽이기도 하고 그렇게 흉측한 외관으로 꿈틀거리는 버러지 같이 난리발광을 떨다가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가장 친근한 이들에게 고통스럽게 뒤통수를 맞았지. 무모했고 무모함에 어울리는 최후였다. 파이프라인의 기대치는 유하라는 감독 이름 하나였다. 낯선 소재와 배우들로 무슨 이야길 하든 화자가 유하 감독이라면 경청하고 싶었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쌍화점, 강남 1970 등만 봐도 그가 한 시대의 청년들로 뭘 할지 궁금했다. 시대와 세대에 휩쓸리다가 비루한 군상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피 터지고 죽는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의 영화에 관련된 누적된 자료들 중에서 유하 감독이 그린 개인 대 개인 또는 집단 난투극은 캐릭터들이 처한 상황 상 필연적인 결론이었다. 죽거나 다치지 않으면 이상했다. 어두운 시대에 잘못된 선택을 해야 했고 진짜 책임을 추궁하기 전에 주인공들은 자멸했다. 위에 나열한 작품들의 주인공들 중 어느 누구도 승리자가 되지 못했다. 패하거나 죽었을 뿐이다. 유하 감독은 그들을 향한 쓸쓸하고 씁쓸한 표정을 드러내고 비슷한 시대를 지나온 다수에게 공감시키는 데 성공한 영상 예술가였다. 파이프라인은 다른 접근들이 보였다. 절박한 등장한 인물들의 배경 서사를 최소화하고 한탕을 향한 고군분투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거대한 양의 기름이 지나는 파이프에 구멍을 뚫어 훔쳐서 비공식 루트로 팔아 돈을 버는 일이었다. 도유 범죄. 구성원들은 서로 섞이지 않고 끝까지 섞이지 않는다. 흙먼지 자욱한 지하 속에서 굴을 파고 파이프를 뚫고 있었지만 그들이 원하던 거액을 거머쥘 일은 너무 요원해 보였다. 큰소리치는 자들의 악다구니 속에서 의뢰자가 돈줄을 쥐고 있었고 스타일시한 자본가가 헐벗은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시작된 점들이 선이 되어 하나의 지점으로 모아지고 후반의 난투극과 폭발은 정점처럼 설계된 듯 보였다. 돈을 위해 서로를 죽이고 속이던 자들이 하나가 되어 돈이라면 사람 목숨은 우습게 보는 자본의 개떼들과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게 되어 유감이기도 한데 유하 감독의 영화 중 비열한 거리가 좋은 건 오락실 난투 장면 때문이기도 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한패인 동생들도 먹여 살려야 하는 병두(조인성)는 정말 개처럼 헐떡이며 게임기를 부수고 다른 조직원 대갈통을 부수고 난리도 아니었다. 깡패들도 저렇게 먹고살기가 힘들구나 같은 애처로움까지 끌어올릴 듯한 기세였다. 파이프라인의 등장인물 중 대다수는 건달과 다를 게 없었고 가진 게 주먹과 드릴 밖에 없었으며 그들이 노예처럼 일하다 궁지에 몰려 개죽음당할 지경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전혀 긴장감이 조성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는 죽고 대다수 다쳤지만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았다. 기대감은 대형 기름통과 함께 폭발할 줄 알았지만 안에 담긴 건 물이었다. 영화는 마지막에 작은 화면으로 웃으며 엉덩이를 흔든다. 부자 범죄자는 망하고 노동계급 범죄자들은 감옥 간다. 새로운 세대와 관객에 대한 해석과 오해가 있었을까. 유하 감독은 이창동 감독이 아니지만 가끔 둘의 차이를 짚어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