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러스킨 감독. 보스턴 교살자
남성이 주도했던 장르의 주인공이 여성으로 바뀌었을 때 남성이 주도했던 영화와 같은 기준으로 보고 있는지 자가 체크할 때가 많다. 다른 기준을 적용할 경우 편견과 편향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늘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길들여진 과정을 재검토하게 되고 공정한지 확인해야 한다. 동일 장르의 유사한 스토리 라인 안에서 남성 주연 영화 여성 주연 영화 이렇게 이분법으로 가르는 것이 아니라 둘을 동일한 기준으로 비평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긴다. 모든 영화를 이렇게 세분화해서 분석하지는 못한다. 어떤 영화들은 반드시 여성 주연으로 이끌어야 마땅할 때가 있다. 소재가 된 실화의 중심이 여성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보스턴 교살자는 그런 영화다. 1962년 미국에서 13명의 여성이 동일 방식으로 살해당한다. 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로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보스턴 연쇄살인 사건으로 명명하고 취재를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직업을 향한 무한한 헌신은 남성 주연의 기존 영화들의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트레이드 마크였다. 주변의 수많은 방해와 반대,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두 역할을 동시에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죄책감, 아무리 동분서주 뛰어다녀도 반대편에서 같은 속도로 마주 보며 달려드는 벽벽벽, 뛰어나 성취에도 불구하고 몰려드는 허무까지 이런 남성 주연 영화에서 (대부분의) 여성 조연은 이런 남성 주연의 고뇌와 희생을 드높이는 하나의 도구이자 장치였다. 여성 조연이 적절하게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키고 아슬아슬하고 문제를 몰아갈수록 남성 주연은 해결사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더 효율적으로 장악할 수 있었다. 영화 보스턴 교살자의 역할 구분은 정확히 반대다. 여성 주연이 시작하고 여성이 발견하며 여성이 갈등하고 부딪치고 해결하고 고뇌하고 희생하고 성과의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한다. 남성 조연은 여성 주연 주변에서 조연의 역할을 한다. 그들 중 남성 범인 외에 지독한 악마는 없지만 여성 주연의 머리 위로 오르려는 밸런스의 붕괴 또한 없었다.
레코드 아메리칸 신문사의 저널리스트 로레타가 원하는 것은 오직 연쇄살인범의 체포였다.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여성 희생자들이 늘고 있었지만 보스턴 경찰의 대응과 수사의지는 너무 미약했다. 보스턴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동일 방식의 여성 살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로레타는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면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빼앗긴 것들에 대해 그리고 이것이 여전히 고의적으로 감춰지고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취재의 속도와 열기를 가라앉히지 못한다. 초반엔 조직의 윗선에서 단칼에 반대하고 경찰들이 비협조적으로 굴며 의지를 꺾으려 억압했지만 로레타는 (기존 남성 주연 영화들의 히어로들이 그렇듯) 자기가 원하는 길의 방향을 수정하지 않고 밀고 나간다. 남편과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로레타는 자신이 여기서 멈춘다면 아무 죄 없이 살해당한 여성 희생자들과 유족들은 그대로 잊히고 대중의 관심은 멀어지며 사건은 영영 묻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이다 같은 즉결 총살을 바란 게 아니라 시민들의 불안을 서둘러 줄이고 적법한 절차를 통해 범인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게 핵심이었다.
로레타는 남성의 폭력적이고 잔혹하며 비상식적인 침묵의 연대가 구축한 끔찍한 불안과 공포의 사회 구조 안에서 단 한 번의 굽힘 없이 타협 없이 스스로에 대한 일말의 연민 없이 브레이크 없이 뚜벅뚜벅 나아간다. 조도 약한 사무실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타자기를 두드린다. 탁월한 여성 동료와 연대하고 모든 순간 당당하게 목적을 관철한다. 담당 사건에 대한 이런 태도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범죄물에 자주 등장하는 마초 형사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강인함이자 의연함이었다. 로레타는 흉내 내지 않고 거친 어둠 속에서 부드럽고 자연스럽고 강력하고 과장 없이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증명하고 드러내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결과를 만든다. 여성을 지킨다. 당대와 미래를 보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