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말했다, 직장 내부의 권력형 성범죄를

마리아 슈라더 감독. 그녀가 말했다

by 백승권

침묵하는 약자의 얘기를 쓰는 게 우리의 사명 아니야?


일터에서의 심각한 성폭력 문제


날 제일 화나게 하는 건 사람들의 침묵이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도 그 얘기를 안 해요.

그는 침묵을 강요했고 다들 그에 순종했죠.

그는 공포와 위압감을 조장했어요.

성범죄자를 감싸는 사법 시스템의 문제죠.


왜 1990년대 얘기를 묻죠?

그가 최근에 저지른 일도 많은데


이 일을 그냥 가슴에 묻고 죽게 될까 봐 두려워.


영화를 보는 내내 가해자, 방관자, 은폐자들을 죽이는 상상을 했다. 재교육은 필요 없다. 범죄자는 죽이고 다른 범죄자가 일어나면 계속 죽이면 된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야 하고 죽은 후 모든 기록을 다 공개하여 경각심과 심각성을 전해야 한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 범죄자들이 나오면 다시 죽이고 죽여야 한다. 나쁜 인간들은 계속 쏟아져 나오고 형벌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과거와 남은 삶을 위로하고 현실의 중력 내부로 복귀를 도와야 하며 아무리 다시 말해도 중요성이 줄어들지 않지만 절대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의 조치를 다해야 한다. 이것이 오랜 문명사회 안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자 대응일 거라고. 영화를 보는 내내 가해자, 방관자, 은폐자들을 죽이는 상상을 했다.


물론 이런 방식은 인류가 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에 있어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통제 방식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사형 제도는 있지만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과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생명권 박탈과 인권 훼손에 대한 논란으로 인해 선고는 되어도 실제 집행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적다. 범죄자를 죽이냐 살리냐를 따지려고 문장을 늘어놓은 게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계의 막강한 권력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여성 배우 여성 스텝 여성 직원들에게 추악한 성폭력을 저지르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지위와 회사 시스템, 전문가를 동원하여 불합리한 합의를 강요했으며 언론과 접촉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감시하고 주변인들을 동원해 압박하며 커리어를 단절시키면서 인생 전체를 옥죄었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는 이 실제 사건을 뉴욕타임스의 기자 매건 투히(캐리 멀리건), 조디 캔더(조 카잔)가 취재하고 기사를 쓰고 발행하기까지의 과정을 면밀히 포착하며 그려낸다.


성범죄 이후 피해자들의 침묵은 선택이 아니었다. 조직적인 압박과 법적인 강요로 치밀하게 이뤄졌고 범죄 사실을 알릴 경우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짜놓았다. 가족도 남편도 친구도 회사 사람들도 자세한 내막을 들을 수 없었다. 이야기가 퍼지면 가장 타격을 입는 건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피해자였다. 가해자 하비 와인스타인을 비롯한 그 주변의 동조자들과 회사 운영진들은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었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았으며 이런 안전망을 통해 수십 년 동안 끊임없이 동종의 범죄를 저질렀다. 매건 투히와 조디 캔더는 여성 직장인이자 엄마의 입장이기도 했고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피로와 스트레스, 두려움과 막막함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일은 그냥 일이 아닌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의지가 담긴 수단이었으며 이들에겐 펜이 칼이자 총이었고 뉴욕타임스라는 지면이 범죄자들에게 쏘아 올리는 핵폭탄이자 숨죽이며 사는 피해자들에게 세상에 나오라고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건 마치 하비 와인스타인이라는 권력형 성범죄자를 내세우고 있는 미라맥스와 언론의 사명과 기자의 신념을 지키며 죄악을 만인에게 알리고 더 많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양지로 끌어내려는 뉴욕타임스의 대결 구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이언맨 같이 한 영웅의 가공할 천재성으로 해결될 게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용기를 내어 지금까지 한 번도 나오지 못했던 곳으로 나와야 했다. 스스로를 한없이 다독이고 방해자들의 협박과 압박을 뚫고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면에 걸고 과거의 피해 경험담을 노출해야 했다. 지금껏 처절하게 무너진 삶을 이제라도 추스르고 다른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피해자들이 더 이상 스스로의 탓이라고 자책하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처럼 원하는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기이하지만 우려되는 부분은 '악의 평범성'이다. 시스템 내부에서 학습된 자기 합리화의 유령에 휩싸여서 가해자의 편에 서고 범죄인 것을 알면서도 침묵으로 동조하고 불리한 위치에 선 피해자와 거리를 두며 자신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려는 것. 힘 있는 자들의 그늘 안에서 침묵하고 방관하는 것만큼 쉽고 안락한 대응은 없다. 늙어 죽기 전에 죄책감이 몰려오더라도 그저 어쩔 수 없었다는 방패로 한없이 스스로에게 관대하면 그만이다. 먹고살려면 입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최면을 거는 주술적 행위. 피해자한테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라고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며 가장 추악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이런 유혹을 경계하고 떨치려는 시도가 기존의 직장 내 권력형 성범죄를 가중시키는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빨리 해체시킬 수 있고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 개개인의 각성을 일일이 요구할 게 아니라 규범과 페널티로 명문화하고 공표하며 실행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이건 모두가 천사의 탈을 쓰자는 강권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을 보살피는 최소한의 도덕성을 갖추자는 호소이다. (녀남을 구분할 일이 아니지만) 가해자의 절대적 비율이 남성이니만큼 이를 스스로 억제하고 주변에서 감시할 수 있는 역할도 상대적으로 남성의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를 줄이는 것은 가해를 막는 것이다. 가해가 일어나기 전 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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