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멘탈, 한 여성의 성공이 이토록 어렵다

피터 손 감독. 엘리멘탈

by 백승권

엠버는 이민자 가족의 외동딸이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낯선 환경에서 어떤 고난을 겪으며 자신을 키웠는지 기억한다. 외면하려 해도 너무 생생하다. 엠버의 아버지는 가게를 열었고 가게의 차기 운영자로 일찌감치 엠버를 점찍었다. 이민자 입장에서 험난한 역경 속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자식의 더 나은 삶을 꿈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엠버가 이를 모를 리 없다. 하여 다른 경우의 수는 없었다. 엠버는 꿈과 미래가 없었다. 꿈과 미래 모두 부모가 정해줬기 때문에. 부모의 희생으로 일군 가게 열쇠를 이어받기만 한다면 엠버는 부모와 다른 노력으로 같은 결과를 얻은 셈이었다. 이게 맞나 하는 의문도 들지 않았다. 가끔 폭발하며 주변을 날려버렸을 뿐이다. 까닭을 몰랐다. 왜 그렇게 화를 품고 있었는지.


어느 상류층 타인을 만나고 나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와 대화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어가며 엠버는 자신의 내면에 무엇이 짓눌려 있는지 깨닫게 된다.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다. 자신이 부모가 정해준 미래와 다른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니. 무의식 속에서 엠버는 발버둥 치고 있었다. 부모가 사지를 묶어 두고 미래를 억지로 퍼 먹여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걸 거부하면 나쁜 딸이었고 그걸 받아들이면 엠버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부모가 평생을 바쳐 이룬 유산을 거부할 천하의 배신자가 될 것인가.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 삶을 선택한 착한 빈 껍데기가 될 것인가. 엠버의 자아와 무의식과 학습된 것들이 격돌하고 있었다. 아무리 바이크를 타고 내달려도 화를 달랠 길이 없었다. 당연히 자신을 선택하는 게 이치에 맞아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쉬운가. 아빠 난 당신이 평생 온갖 말 못 할 고생 하며 끝내주게 이뤄낸 가게 사장이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제가 일단 하고 싶은 디자인 회사 인턴이 될게요. 삶은 디즈니와 픽사가 만든 만화와 다르다. 해피엔딩은 불과 물이 만나 각자의 고유한 성질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희박하다.


엘리멘탈은 공들인 엠버 캐릭터 서사의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치트키를 쓴다. 헌신적인 재벌 남자 친구가 등장해 엠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한다. 재벌 사위라니, 엠버의 부모에겐 더할 나위 없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정말 그를 사랑하는지 묻지도 않는다.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엠버는 완벽한 인생의 동반자이자 후원자와 함께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시켜 줄 최상의 조건이 갖춰진 아주 먼 곳으로 떠나면 된다. 둘의 만남은 양극화된 계급의 근사한 화합이자 모든 갈등을 해소시켜 주는 마무리이며 무엇보다 시대와 세대의 억압으로부터의 위대한 탈출이다. 물론 디즈니와 픽사가 만든 이야기인데 엠버가 자신의 재능을 살려 평생 예쁜 유리병만 만들다가 같은 계급의 남성과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끝내긴 아쉬웠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완전히 증발(소멸)시킬 정도로 엠버를 사랑하는 웨이드가 있었기에 엠버는 꿈꾸던 커리어의 시작을 알리는 화려한 재킷을 입고 모든 과거로부터 떠날 수 있었다. 엘리멘탈은 남다른 잠재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판타지와 은유를 다루는 픽션에서조차) 한 여성의 성공이 이토록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모의 처절한 희생은 기본, 배우자 가문의 막강한 네트워크와 권력으로부터 오는 취업 지원, 배우자의 한없이 순박한 헌신과 허망한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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