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인 감독.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
아비는 어떤 인간이었을까. 어떻게 살다 뒤졌길래 우리가 이럴까. 우리라는 말도 역겹다. 무너진 개집만도 못한 집구석. 딸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어미. 모든 관계에 대한 증오가 치솟는다. 그렇게 키워졌다. 하도 괴로워서 제발 제대로 때려달라고 편지를 썼지. 당신의 무차별 폭력을 어린 나는 견딜 수 없어서 제발 이유와 기준이 있으면 좋겠다고. 어차피 죽도록 맞을 거라면 알고나 맞고 싶다고. 당신은 너무 무능력해서 자신을 불쌍하게만 여길 뿐 당신 살가죽을 찢어 밖으로 밀어난 생명을 한 줌도 챙기지 않고 처절하게 외면했지. 당신의 증오와 혐오가 딸의 모든 인생을 갈가리 찢고 짓이겨 놓았어. 당신은 절대 모를 거야. 스스로를 증오하고 혐오하느라 딸을 그렇게 방치하고 학대하는 걸 절대 인정 안 하지. 다른 집도 다 그렇게 키워!라는 개소리뿐이야. 다른 집도 딸의 첫 생리를 더럽다고 비난하고 다른 남자 정액이 든 구겨진 콘돔을 변기에 쑤셔 넣나. 단 한 번의 졸업식에 올 생각도 하지 않고 이걸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나. 딸에게 정신병자라고 악다구니를 지르며 집밖으로 밀어내나. 인간에게 성숙은 그저 몸이 커지는 게 아닐 텐데. 당신은 딸을 아직도 애라고 했지. 자라는 모든 과정을 짓밟고 독약 같은 폭언과 물리적 폭력으로 짓눌렀으면서 당신은 자신이 엄마로서 보상받길 원했지. 당신 삶을 망친 건 당신이고 딸의 삶을 망친 건 당신이라는 걸 당신은 죽어도 모르겠지. 태어날 때 딸이 무거웠고 자기는 가냘펐다고 핀잔을 줄 뿐. 당신의 모든 말이 송곳처럼 온몸을 찌르고 녹슨 톱처럼 온 신경을 자르는데도 당신은 화장을 하고 염색을 하고 팬티를 갈아입더라. 뺨을 어루만지며 사랑을 고백하는 애 딸린 홀아비에게 눈물을 보이며. 그와 새 인생을 시작하려면 제 앞가림도 못하는 딸은 혹이자 짐이고 제발 누가 버려줬으면 하는 음식쓰레기와 같았겠지. 그래서 딸을 향해 죽으라고 읊조리며 가속페달을 밟은 걸까. 사고사로 위장하고 살인을 저지르려 한 걸까. 어떤 짐승이 자기 새끼를 차로 치어 죽이려 들까. 지금껏 열거한 혐의들이 인생 다 힘들고 너도 커보면 알아 이런 말로 정상참작이 될까. 당신 때문에 딸은 타인의 배려를 오해하며 대안보호자처럼 의지하고 그렇게 타인의 시공간을 침범하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모른다. 뫼비우스 띠처럼 불안하고 불온한 두 여자가 세대를 넘나들며 서로 이어진 걸까. 이렇게 흉측한 관계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 걸까. 얼마나 자신들과 주변과 타인들을 죽이고 있는 걸까. 딱 맞는 사이즈의 편안한 속옷 같은 엄마는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여기서 딸이 그토록 애원하며 기대한 건 자신을 사람의 새끼처럼 자각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였다. 인간이 아닌 자에게 그걸 바라니 돌아오는 게 없었나. 아비는 어디 가서 뒤졌는지 형체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