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 만약에 소희가 연쇄살인자로 부활한다면

정주리 감독. 다음 소희

by 백승권

가장 먼저 담임을 죽인다. 담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처참한 무지와 악독한 의리로 무장하여 소희를 사형대로 떠밀었다. 단 한 번이라도 소희의 토로에 귀 기울이고 대응을 같이 고민했다면 소희는 죽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는 죽음으로 동일한 대가를 치르기에 마땅하다. 수십일 밤낮을 욕설과 음담패설이 범벅된 컴플레인을 내내 듣게 한 후 죽인다. 그다음에 콜센터, 센터장과 클라이언트들, 새로 온 팀장을 죽인다. 이들은 모든 장기를 탐욕으로 갈아 끼운 채 사회적 최약자들을 결박하고 숨통을 조이며 대량학살했다. 살인 시스템의 설계자이자 핵심 동력인 이들 모두 죽어 마땅하다. 이들을 모두 결박하여 한 차에 몰아넣고 밤새 유독가스를 피워 죽게 한 후 자살로 위장한다. 그다음은 부모를 죽인다. 둘에겐 변명의 여지가 차고 넘치겠지만 소희는 그들에게 스스로 죽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했고 그들은 침묵으로 냉혹하게 거절했다. 소희는 죽고 싶지 않았지만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서 자신이 견뎌야 할 마지막 이유를 상실한다. 둘에겐 별다른 살해 방식을 가하지 않아도 된다. 이들은 사는 내내 수천수만 번 죽음의 고통과 슬픔을 겪을 테니까.


소희(김시은)는 살고 싶었다. 사는 기간 내내 겪어야 했던 모두가 전력을 다해 그 이유를 치밀하고 집요하고 악착 같이 빼앗아 가지 않았다면 소희는 지금도 안무연습실에 조금씩 늘어가는 자신의 춤실력을 보며 입을 막고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희에겐 더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 이가 아무도 없었고 결국 떠밀려 최후를 맞아야 했다. 얼마나 더 많은 다음소희들이 죽어야 할까. 우두머리들의 목을 벤다면 하위 구조에서 짓이겨지고 있는 이들에게 좀 더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상생은 필요 없다. 동일 생태계 내에서 포식자를 숙청하면 피식자들의 개체는 늘어난다. 피식자들이 힘을 키워 권력관계가 뒤집힐 수도 있다. 콜센터 실습생들이 각자의 날카로운 무기를 들고 상급자들을 단계별로 사냥하면 어떨까. 아무리 혁명이 일어나도 소희는 돌아오지 않지만 다음소희들이 같은 대우와 멸족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이 죽이려 든다면 똑같이 죽일 수밖에.


나는 술을 못 마시지만 카스 두 병을 시키고 잔 하나를 시켰던 장면에서는 가만히 가까이에서 잔 하나 더 부탁하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싶었다. 양말 사 올 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새 신발 퀵으로 주문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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