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고나다, 저스틴 전 감독. 파친코
탄생부터 죽음까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부모, 형제, 가족, 사는 동네, 이웃, 음식, 날씨... 인간의 삶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들 중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삶을 바꿀만한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이라는 것도 결국엔 저런 환경적인 요소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기회 아닐까. 더 나은 조건이라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무엇을 선택해도 최악의 조건이 만든 선택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이런 격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 태초의 환경적 제약을 극적으로 돌파하여 일정한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오른다 한들 과거의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 또한 선택할 수 없는 영역 아닐까. 주어진 것들에 의해 평생 휘둘리고 휩싸이고 사고를 조종당하고 합리화를 강요당하는 삶. 시대와 세대가 바뀌며 극화된 다른 시대와 세대의 모습들을 보고 있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조선과 한국이라는 국가의 시대 상황과 그 시대의 송곳에 온몸이 관통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3대를 보여준다.
가장 자주 또렷하게 들렸던 대사는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이다. 이 말은 자신의 처지가 최악이 아님을 나타냄과 동시에 상대의 넋두리를 원천 봉쇄하는데도 효과적으로 쓰인다. 그리고 파친코는 그 없는 사람 없다는 사연에 대해 묘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천하의 몹쓸 악당 같은 놈에게도 다 떠들어 댈 수 없는 사연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 사연이 현재의 악행을 변호하는 데 쓰이진 않는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는 대사는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매번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편파적인 시각을 교정하거나 특정 캐릭터에 대한 감정적인 몰입을 막아주기도 한다. 시대가 저지른 위악은 골고루 뒤덮이고 그 안에서 특별히 더 불행한 이는 없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만 좀 더 오래 살아남은 자들이 자손을 통해 목소리를 이어가고 죽기 전 반성과 회고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지게 된다. 장기 생존자들이 발화와 기록의 특권을 누리는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부끄러운 짓을 하며 살면 안 된다는 라는 말은 널리 통용된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란 너무 어렵다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애플 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를 악문 자들이 끝까지 살아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식이 울고 쌀이 떨어진 마당에 부끄러움을 따질 때가 아니다. 모르는 게 많아도 당당한 선자(전유나, 김민하, 윤여정)는 조선인의 평균보다 더 위대해 보였다. 세상의 수많은 선자들이 본인과 다음 세대의 운명을 바꾸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