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라 노이게바우어 감독. 더 브릿지
폭파당했는데도 돌아가고 싶어요?
그냥 이곳을 벗어나야 해요
우리가 똑같이 희망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사냐는 질문은 지겹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리지 않으며, 그냥 산다. 살아있기 때문에 살기도 하고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으니 딱히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다 입장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거대한 충격을 겪고 이후에 후유증이 영영 떠나지 않는 경우라면, 무서워진다. 그동안의 궤적을 더듬게 된다. 궤적의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 도망쳤고 도망친 곳에서 폭탄이 터져 옆사람은 불타고 다른 사람들은 총에 맞아 죽었다. 마약에 빠져 폐가 타버려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오빠가 있는 집으로부터 도망친 전장에서 그런 일이 터졌고 린지(제니퍼 로렌스)는 돌아와야 했다. 돌아오고 싶지 않았지만 돌아갈 곳이 없었고 어서 회복해 전장으로 아무도 날 모르고 과거의 날 모르고 날 그저 전부의 일부로만 대해주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거기서는 난 다른 사람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부상 후유증은 오래 또 깊이 남는다. 근육의 기력이 소실되어 테이크아웃 컵조차도 쉽게 떨어뜨린다. 이런 무력한 자신을 이렇게 된 처지를 경멸한다.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은 상태로 놓인 것 같다. 엄마조차 아무 역할이 없다. 그저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 서로의 삶에 짐과 같은 존재, 엄마도 그저 이 동네에 남겨진 조각이다. 그녀의 삶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전장으로의 복귀를 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언제 수리한지도 모르는 차가 운전 중 고장 났다. 고장 난 과거, 고장 난 가족, 고장 난 몸으로 고장 난 내 인생처럼 고장 난 차까지. 카센터에 간다. 거기서 정비공 제임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를 만난다.
제임스는 동네 토박이다. 그의 과거는 린지와 다르지만 그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상흔을 남긴 사고를 겪었다. 운전 중 사고가 났고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는 한쪽 다리를 잃었다. 제임스는 말을 아꼈지만 당시 그는 술을 마셨고 운전을 했으며 아이가 원한다는 이유로 차 앞자리에 태웠다. 그리고 사고가 났다. 제임스는 사고를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신 후 동승석에 타고 린지와 함께 집에 돌아온다. 둘은 회복 불가의 과거를 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격렬한 화학작용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제임스는 남은 삶을 후회로 보내야 하고 린지는 어서 몸을 만들어 지옥 같은 집을 떠나 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화 더 브릿지는 여기서 멈춘다. 린지와 제임스의 공통분모를 설정하지만 둘 사이의 강렬한 접착제를 추가로 배치하지 않는다. 둘은 거리를 둔다. 상처받은 이들 끼리의 위로와 공감과 섹스를 하나의 연결로 보는 입장과 거기까진 아니라고 하는 입장의 차이가 분명했다. 제임스는 혼자만의 오해에 어이없어하고 린지는 혼란과 아쉬운 태도를 보이다 둘의 관계는 멈춘다. 영화도 같이 멈춘다. 상처받은 백인 성인남녀가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고 동네를 달리던 영화가 떠올랐다. 이 이야기가 설득력 있었던 이유는 비극의 구체적 이미지, 둘러싼 가족이 이루는 단단한 균형, 거기에 댄스 경연대회는 유머와 긴장의 유쾌한 정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처받은 흑인 백인 성인남녀가 트럭과 벤치, 남의 집 수영장에서 토로와 갈등을 오가는 더 브릿지는 많은 부분을 비슷한 이야기에 학습된 관객들의 상상과 유추에 기댄다. 비슷한 등장인물의 기존 영화에 비해 남다르거나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다. 다만 전쟁 후유증의 주인공을 여성, 여군으로 설정한 것만은 의미 있었다. 전체 미군 중 17%는 여성이라는 통계로 볼 때 다각도로 군인을 소재로 활용하는 헐리웃 특성상, 전장과 군대를 경험한 여성에 대한 관점은 양적으로 좀 더 부각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