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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May 19. 2024

이 스토킹 범죄는 단순하지 않다, 베이비 레인디어

리처드 개드 작가. 베이비 레인디어

하루에 80통 가까이 밤늦도록 계속됐다


스토킹 전과범이 날 스토킹했다


일방적인 사랑이 제일 위로가 되지 않아?


아주 오래 그 수치심을 삼키고 살다 보면

그게 내 일부가 되는 걸 막기가 힘들다


두 번 이혼하고 슬픔에 잠긴

전 여친의 어머니와 동거하는 건

정말 특이한 생활이었다


저 사람 의견을 신경 쓰는 내가 싫네요


언젠가 내 삶이 어딘가로

이어질지 모른단 희망이 그리웠다


이성애 중심 사고로 똘똘 뭉친

여성 혐오자들에 둘러싸여

그들의 승인을 갈구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어

가장 어두운 내 불안의 주머니를 환하게 밝혔다


마사는 내가 비춰지고 싶은 모습으로 나를 봤다


나의 일부가 그녀를 그리워한 걸까?


내 스토커는 노련한 프로였다


그 여자는 네 불쾌한 억압을

한 인간에 담아낸 집합체야


전 정말로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관심받고 싶은

어리석은 욕구를 채우려고


자기혐오 전 그걸 사랑해요

그거에 중독됐어요


난 그 여자가 불쌍했다

그게 처음 든 감정이다



차라리 태어난 게 죄고 살아가는 게 벌이라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모든 일을 단순하게 여기라는 조언은 복잡하게 여겼을 때 따라오는 여러 번거로움과 부정적인 여파를 회피하기 위한 회피형 생략을 강권하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순간만 인지하고 감각하며 살아간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때 그건 삶이 아니겠지. 고장 난 전구처럼 깜빡거리기만 하는 존재일 뿐. 스토킹 범죄를 소재로 한 베이비 레인디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단순 구도로 흘러가지 않는다. 치밀한 범죄계획과 괴로운 피해사실로 단순 대비하지 않는다. 스토킹이 불러오는 폭력적이고 광범위한 폐해를 넘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또 다른 물리적 정서적 폭력과 이로 인한 인과관계, 연결고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 번뿐인 삶에서 상실과 보상은 이토록 복잡하고도 예상과 다른 형태로 이뤄지는 걸까. 물론 과거의 폭력이 현재의 사건으로 직결되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드러낸 이야기를 통해 짐작할 뿐이다. 당사자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기억에서 끄집어낸 자신의 삶에 대한 복잡하고 파괴적인 인과관계에 대해서. 스토킹 피해는 결과의 일부이자 과정이었다. 그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남은 삶에서 또 어떤 상처와 억압이 누적되어 점화될지 모른다. 폭발할지 모른다. 사상자가 발생할지 모른다.


성공한 스탠딩 코미디언을 꿈꾸며 술집에서 일하는 도니(리처드 개드)는 손님 마사(제시카 거닝)에게 작은 친절을 베푼다. 둘의 대화는 길어지고 마사는 도니에게 집착한다. 하루종일 맞춤법이 틀린 저속한 메시지를 보내며. 도니는 과거의 애인 집에서 살며 다른 애인을 만나고 있고 현재의 생계와 미래가 불안정했으며 정체된 자신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코미디언 커리어 준비 과정에서 겪은 엄청난 폭력의 후유증으로 극심한 혼란과 침울함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 와중에 마사의 등장은 새로운 형태의 학대이자 복잡한 연민, 관심받고 싶은 욕망의 충족, 가족과 지인에 대한 폭력과 협박 등이 섞여 도니의 삶을 가장 낯선 방식으로 파괴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도니가 혼란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반응이었다. 그는 마사의 폭력적 집착과 괴롭힘을 자신이 고대했던 관심과 일방적인 사랑으로 느끼고 있었다. 마사의 모든 메시지와 태도는 도니를 연인으로 대하고 있었고 도니는 그런 마사를 힘들어할 뿐 잔인하게 단절하지 않았다. 끊어지지 않은 선은 다시 이어지고 점액처럼 들러붙어 도니 일상의 호흡기를 모조리 틀어막고 있었다.


무대에서 눈앞의 관객들을 웃겨야 하는 (코미디 배우) 역할을 해야 하는 도니는 마사의 폭압적인 스토킹 안에서 피해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발견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마사가 스토킹 전과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과 지인이 겪은 물리적 폭력 등의 치명적인 피해 사실을 경찰에 알리는 데 주저했다. 공공의 제어장치가 자신과 마사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알아서 끊긴다면 좋을 수도 있지만 그걸 자신의 손으로 직접 끊어내는 게 꺼려지는 것처럼 보였다. 도니는 마사의 행위에 대한 끔찍한 괴로움과 피해 속에서도 이런 관계의 유지와 연결을 (아주 소량일지언정) 바라고 있었다. 자신이 이런 고통을 느낄만한 인간이라는 데에 힘을 싣고 있었다. 낮은 자존감이라는 작은 불씨에 관심과 애정을 표방한 폭력적 집착이 기름처럼 들이부어지자 걷잡을 수 없는 화염이 모든 것을 재로 만들고 있었다. 처음 만난 순간 베푼 조금 과한 친절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 마사가 보인 행태의 일부는 도니가 불특정다수에게 바라던 관심과도 같았고 둘 사이를 강하게 접착시킨 스토킹 범죄는 마사와 도니가 협업한 결과물처럼 보였다. 상처받은 인간이 관성처럼 자신이 더 상처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본능적으로 잡았고 파멸적으로 확장된 케이스였다. 끔찍한 괴로움 속에서 그는 이것이 자신이 선택한 학대인지 늘 의심하고 있었다. 죄책감은 도피처였다. 자신을 탓해야 이 모든 지옥이 설명될 수 있다고 도니는 믿는 것처럼 보였다.


마사가 없어도 마사의 목소리는 남아있었고 먼 과거의 가해자는 여전히 잘 살고 있었다. 도니는 최소한 주변을 지키려 애썼지만 그는 힘이 없었다. 자신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실패한 이에게 타인에 대한 공감대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처참한 바닥을 만천하에 공개한 후에 그는 원하는 명성을 얻었지만 정신적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도니는 파티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늘 파티에 초대받고 싶어서 문 밖에서 노심초사하는 지위에 있어야 안도할 수 있었다. 모두에게 진실을 말하면 잠시 편했지만 완전히 해소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니는 자신이 섬뜩한 메시지로 아기순록이라고 불렸던 길고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기어이 찾아낼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여전히 범죄자에 대한 그럴듯한 서사와 동기를 이해하려고 했고 그렇게 자신이 당한 피해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그토록 불쌍했던 도니는 우연히 마주한 범죄자에게서 다른 버전의 자신을 발견한 셈이었다.




*

본 글의 제목은 해당 드라마의 

사건, 맥락, 인물, 관계의 복잡성을 표현하기 위함이며, 

실제 발생한 다른 스토킹 범죄를 

단순하다고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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