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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피와 뼈

by 백승권



모든 겨울이 그렇듯

늘 같은 끝은 없어요.

저는 그랬습니다.


겨울은 참 유난하죠.

가장 인간적인 시즌이라고 여겨질 만큼.

기억나는 고난의 계절적인 배경을 떠올리면

겨울이 단연 압도적입니다.


어떤 겨울에 겪었던 복잡한 마음을

긴 시의 형태로 적어 보낸 공모전에서

파이널리스트까지 오른 적이 있었어요.

심사평에 겨울이 들어간 제목이 별로라서

선정에서 제외했다는 내용이 기억납니다.


어떤 겨울은 늘 추위를 압도했던

또는 추위와 더 불어 더 춥게 했던

비슷한 질감의 피와 뼈와 살덩이로 이뤄진 인간들에게

경멸과 환멸을 느끼게 했던 사연들로

내내 화려했습니다.


어떤 성탄 트리가 이토록 화려할 수 있을까요.

잔가지와 거친 껍질이 온통 피와 눈물로 물들고

땅 속으로 힘차게 내딛는 뿌리에

몸통이 뚫려 괴성을 질러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시간이


형형색색 늘 다른 컬러와 디자인을 입혀보아도

아무리 귀를 막아도 비명 소리는 숨길 수 없었던

잊을 수 없었던 다른 감각으로 바꿀 수 없었던

시간들이 모두 겨울이었습니다.


뻔뻔하게 반복한

상처의 전시가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질 정도로

스스로 인정하게 했죠.


그래 상처받은 시간이었다고 인정하자.

그걸 인정한다고 아무 일도 나아지지 않겠지만.

겨울의 가슴팍에 훈장은 달아줄 수 있으니까.

가장 끔찍한 기억이 많았던 계절이라고 선정하자.

겨울이라는 이름을 죽음이나 비극으로 바꿔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거라고.


어떤 긍정주의자들은 항의할지 모르지만

너희의 해석 때문에 나와 우리가 겪은 지옥을

따스한 화로나 불꽃놀이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고.


어떤 경험은 훗날을 위한

영양제처럼 여길 수 있다지만

시시각각 들이키는 독약의 농도와 양 때문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기억의 훼손과

인간 자체에 대한 막대한 피로를 겪어야 했다고.


망각은 있어도 용서는 없을 거라고.

복수는 있어도 속죄는 없을 거라고.


모든 겨울이 그렇듯

늘 같은 끝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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