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

by 백승권

시간에 대한 인지가

흐릿해질 때가 있어요.

물방울 맺힌 유리창 안처럼

바깥이 그림처럼 보이고


과거현재미래의 구분을 의심합니다.

과거의 누적값이 현재이고

미래는 현재의 고통에서 도망치기 위해

창조한 개념이라고.

과거의 미래로서 현재를 부를 수 있지만

현재의 미래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도달한 동시에 과거가 되는 현재를

미래라고 구분해서 칭하는 건 그저

현재와 과거를 극명하게

나누려는 장치에 불과하다고.


아무도 도착한 적 없이

그저 하나의 가상의 대상으로서만

이야기하는 미래를 실존의 영역에

초대할 수 없어요.

과거와 현재와 레벨과 계급이 다릅니다.

과거가 아침이고

현재가 점심이라면

미래는 꿈에 불과해요.

보이지 않는. 느낌 같은 물성.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게 된 건

나의 미래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아서.

나는 그저 과거를 거쳐 현재를 지나는 동안

모든 에너지와 유산, 고맙다는 인사를

사랑하고 아끼는 나의 사람들에게

모조리 쪼개어 나누어주고 이만

산화하려 합니다.


별다른 절차가 필요하지 않아요.

저는 이미 충분히 분쇄되어서

부드러운 입자가 되어

공기 중에 흩날리고

햇볕에 바싹 마르다가

밤이 오면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어요.


과거의 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현재의 나를 알아볼 수 없고

그저 주변의 증언과 호칭을 기워서

겨우 호흡을 유지하고 있어요.


고통의 입을 틀어막는 동안

등이 굽고 목이 휘고 눈이 멀고

손발톱이 빠지고 폐가 수축되고

근육은 납작해지고 피부는 벗겨지고

거울에 모르는 사람이 세수합니다.


살고 싶다고

살려 달라고

제발 그만해

몇 번 외쳤나


살을 찢다가

피가 흘려야

잠시 멈추고

다시 아물면

다시 찢다가

피가 흐르고


정상인 적 없어서

언제 멈출 줄 모르겠고

이유도 이제는 중요하지 않아서

멈추려면 숨도 멈춰야 하지 않을지

나는 어쩌다 싸움을 멈추고

욕을 멈추고 저항을 멈추고

노력을 멈추고 의지를 잠그고

의문을 멈추고 조용히

아무도 보이지 않는 물속으로

그렇게 두려워했던 바닥으로

발자국도 남기지 않은 채

숨을 그만 쉬려는 연습을 하나.


살의를 거두고

증오를 거두고

미움을 거두고

악의를 거두고


인사 없이

이제 그만

과거가 되어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