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Alessandro Marcello

by 백승권

보이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서

과거의 대화를 뒤적거리다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표정을 매만지다가

울다가 그만 두곤 해요.


매번 이런 식이니

늘 보이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 같고

과거는 자꾸 소환 되고

혼자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암호로 도배한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고 아무도 오지 않는 데

기대하고 기다리다가

매일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소리내지 않고 다시

울다가 잠을 청해요.

내일은 다르겠지 읊조리며.


어떤 과거는 기이할 정도로

강렬하게 각인되곤 하는데

나중에 알게 됩니다.

그게 내게 닥칠 미래였음을.


안구가 두 개여도

처방전에 맞춰 렌즈를 갈아 끼워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시간들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대화들과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영영 그림자를 감추고

형체를 드러내지 않게 된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닌데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아서

보이지 않아서 없다고 믿고 싶어져요.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다시 울어요.

우는 거 밖에 할 수 있는 게 이제 없구나.

보이지 않아서 더 이상 상상할 과거가

희미해져서 약해져서 지쳐서

느리게 걷다 휘청거리고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기억을 더듬다가

그마저도 너무 투명해져서

과거가 자의적잉 해석과 환상은 아니었을까

의심하고 자신을 밀어내다가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 자신과 겨루다가

제발 제발 과거를 그렇게 지워서

스스로를 파괴하지 말라고

빛을 배격하고 내일을 부정하고

기대를 혐오하고 위로를 왜곡하는

눈 먼 애벌레가 되지 말라고 울면서 빌어.

나를 밀어내며 나를 말리며 나를 흔들며


우리라는

우리가 어딘가

우리가 언젠가 있었다는 믿음은 너무 착해서

모든 것들에게 자리를 다 내어주고

자신은 가만히 서 있다가

먼지처럼 사라지고 다시 모여.

너무 착해서 스스로에게조차

약자 역할을 맡지.


우리는 환상의 애착인형 같은 존재였고

주제 파악을 하기 전까지 그게

실제로 있다고 너무 애절할 정도로

집착해서 떼어놓지 않아서 차라리

환상에서 깨지 않겠다고 현실로 향하는

모든 길을 막고 다리를 불태우고

창문을 막고 그 안에 물을 채운 후

허우적 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어.

수영도 할 줄 모르면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계획도 없이

선택한 거야. 여기까지만 살겠다고.


물 속에서 눈을 감고

서서히 가라앉으며

힘을 빼고 팔을 벌린 채

세어 봐. 얼마나 오랜 시간

보이지 않았을까.

바닥에 완전히 등이 닿기 까지

뭐가 보일까. 어둠 뿐이라면

어둠도 과거 아닐까.

과거의 이미지가 보이고

그건 보이지 않는 것과 다른 게 아닐까.

숨을 참고 있는 걸까.

쉬고 싶지 않은 걸까.

끝은 언제 지났을까.

언제까지 끝이 계속 될까.


어둠이 보이고

끝은 안 보이고

바닥은 아직.


두려워요.

환상이 아닐까 봐.





BGM

Concerto in D Minor (After Alessandro Marcello), BWV 974: II. Adagio


ALBUM

Glenn Gould - The Ryuichi Sakamoto Selection [Complete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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