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호수 사이의 길을 따라
바람과 나무 사이를 걸었어요.
걷다가 잠시 의자에 앉아 있었고
강아지는 유모차를 타고
사람은 뒤에서 밀고 가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고
나뭇가지 사이에 앉은 새가 다시
날아가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고
혼자 걷다가 둘이 걷다가 셋이 걷다가 걸었어요.
날이 흐려서 눈이 부시지 않아 좋았고
멀리 작은 아이들이 귀여워서 좋았고
오래 다니던 서점이 문을 닫게 되어서 아쉬웠고
오래 다니던 식당이 문을 닫게 되어서 아쉬웠고
편지지와 엽서를 여러 개 보다가 내려놓았어요.
가만 보니 최근 수달 동안 글로
옮겨지는 일상은 온통 무채색이거나
심해를 닮았거나 헤모글로빈이 많거나 그랬는데
그렇지 않은 순간도 있구나 싶기도 했죠.
그걸 너무 간과했구나 싶기도 했고.
작은 웃음도 웃음이고
작은 쉼도 쉼이고
작은 달콤함도 달콤함인데
희망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다고
검정으로 보고 있었나 싶기도 했고
이 정도로는 괜찮지 않구나 싶기도 했고
커다란 구름을 빠르게 밀어내고
너른 수면을 거세게 밀어내는
거센 바람을 보며
보이지 않는 힘이 저렇게
보이는 것들을 움직이게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파도가 사람을 삼킨다 해도
결국 뒤에서 바람이 떠민 거였나 싶기도 했고
바람의 방향을 미리 읽은 들
파도가 멈출 일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모든 것은 각자 알아서 움직이고
각자의 천국과 지옥으로 알아서 흩어지고
사이의 중간계에서 헤헤거리며 웃기도 하고
저마다의 슬픔과 기쁨을 쥐고 있겠고
굳이 이야기되지 않는 눈물도 있겠고
하지만 다들 그냥 걷고 있나.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이렇게 단념하며.
색약이라 그런가.
어릴 적 성장판을 다쳐서 그런가.
스무 살 초반에 머리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그런가.
왜 자꾸 생각이 보이지 않는 물속으로 기울까.
늘 흙바닥을 헤쳐서 물을 뿌옇게
만들 필요는 없을 텐데.
나의 고통에 그만 몰두하고
타인의 기쁨에 더 헌신하면 좋을 텐데.
선글라스는 햇볕을 가리는 거지
앞이 아얘 안 보이는 게 아닐 텐데
눈을 감아요.
몇 개의 컬러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