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

by 백승권

결국 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를 때가 있어요.


주변에 팔을 뻗으려고 했었지. 이미 뻗었거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그동안 그렇게 뻗고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으면서도

다시 뻗으면 누군가 지푸라기라도 던져 잡아줄까

그렇게 장기 보존 망상에 빠져 그렇게 뻗었을 때조차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으면서도 또다시

멈춤 버튼이 고장 난 카세트 플레이어처럼 그렇게 또다시

뻗고 뻗고 뻗어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나서야

빈 손을 허우적거리다 부끄러워 슬며시 되돌려놓았을 때

손목이 저릿할 정도로 무수히 반복하고 나서야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어요.

팔을 뻗는 게 보이지 않았거나

다른 방향으로 뻗었거나

애초 뻗지 않았는데 뻗었다는 착각에 빠졌거나

팔이 없었을 수도 있겠죠.


도움을 요청하려다

도움이 실패한 슬픈 전설 같은 게 아닌


도움을 제대로 요청하지 않았으면서도

도움이 거절당했다는 망상에 빠져 있던 것은 아니었나

그 정도로 주변과 환경에 대한 인지와

자신의 행동과 시도에 대한 확신이 불분명하다면

결국 다리가 없더라도 서서 버텨야 하는 근간은

스스로의 힘 밖에 없다는 걸

내가 내 멱살을 잡아끌어서 일으켜 세워서

비를 맞든 쓰러지든 불에 태워지든

홀로 버티게 해야 한다는 걸

이렇게 불현듯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너무 서서히 진행되는 불현듯.


혼자를 너무 혼자 바라보고 있었더니

혼자의 뒤에 누가 투명하게 바치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혼자의 손을 누구의 투명한 손이 잡아주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혼자 생각한 적도 있었죠.

혼자 마음이 따스해져 웃기도 했고.

혼자 괜히 뭉클해져 글썽거리기도 했고.

혼자 그렇게 혼자 쓴 시나리오를 믿으며

혼자가 혼자에게 의지된 모양새.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하려고 모은 두 손바닥인데

지쳐서 졸다가 한 손바닥을 타인의 것으로

착각했었나 봐요.


아까는 잠시

나를 혼자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의지가 조금 생겼어요.


누가 일으켜줬으면 좋겠다고

조금은 의지하고도 싶었는데

돌아보면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정말 그런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그 역할을 해줘야 했는데

누군가는 내게 그걸 기대하거나

내가 그걸 충족시켜 줬을까 싶기도 하고


나는 내가 지겨워요.

너무 오래 같이 지내서.

대화도 동거도 불화도

감정조절도 고장 난 체력도

예민한 귀와 흐려진 눈

늘 졸린 머리와

쫓기는 시간까지

엉겨 붙어 있는 점액질의 그림자

스토커 범죄자 같은 자의식

더럽고 나쁜 습관

불편하고 번거로운 소심함

엉망진창인 자기 합리화

이걸 다 끌어안고

늘 제자리에서

지겨운데

온몸이 다쳤어도

썩은 나뭇가지 밖에 없다면

그거라도 잡아서

절뚝이며 걸어갈 수밖에

이건 낭만 같은 게 아니죠.

차악의 선택 같은 것.

여기에 나 밖에 없어서

나를 끌고 다니는 것

내 그림자를 밟고서

최후의 동료로 삼는 것

자아를 분쇄기에 넣어서라도

타자로 인식할만한 인격을 부여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가며

개인을 하나의 무리로 인식하는 것

나를 다수로 여기며

거미 같은 다리의 개수로 맞추는 것.

그렇게 잠시라도 넘어지지 않겠다는

착시를 일으키는 것.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려고

아등바등거린 적 없다고 여겼는데

그 반대는 아니었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과거의 내가 레퍼런스가 될 일 없는데

다시 일으키려면 어떤 최면을 걸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어떤 감언이설로 속삭여야 할지

나를 넘어뜨린 게 나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를 일으키는 건 결국 내가 되어야 하다니


혼자 밥을 먹을 순 있어도

혼자 정신 차리는 법은 도저히...

아니 원래 그런 건 없는데

누군가 가능하다고

거짓을 퍼뜨린 건 아닐까.


나는 일어나지 못해요.

어딜 잡고 일으켜야 할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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