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주일의 죽음(들)을 시작하며

by 백승권

불안과 희망이 교차해요

내가 뭐라도 할 수 있겠지 같은 희망과

나따위가 더 이상 뭘하겠어 같은 절망

아까 불안이라고 썼나요

절망이든 불안이든 뭐든


욕심이 자꾸 돋아나며 덩굴식물처럼

휘감고 오르는 건 어떤 징조일까요


친구가 그랬어요 우울할 땐

감사할 내용을 매일 3가지 쓰고

점심엔 자주 햇볕 쬐라고

Z같은 세상 다시 한번 살아보자고

그 친구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되려 알려준 마음이 고마웠어요


인간에게 받는 위로는 좋구나

위로라고 감지할 수 있는 것도


무지와 도취가 풀리지 않는

기묘하게 오만한 상태에 있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은데

시선과 평가의 동공을 찌르고

헛소리와 무례의 이빨을 뽑으며

오직 내가 인정하는 나로

스스럼없이 존재하는 상태


평균과 균형이 꼭 양팔을 벌려야 하나요

한번 좋은 일과 백한번 나쁜 사건으로

중심을 잡는 삶이 제대로 된 건가요

겨우 괜찮은 일 한번으로 그래...

이정도 소소하게 좋은 일들이 쌓여야

인생이 살만하지...아...제발

분열된 네번째 자아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허약한 낙천주의를 지닌 두번째 자아의

명치를 찌르고 열번째 자아가 그걸 말리고

나머지 자아는 관심없거나 구경 중이고

생각이 현실이 된다는 데

이게 현실이라면 생각은 언제부터였을까요


남은 삶도

타인의 불행을 동력 삼아 겨우 걸어가게 될까요

보이지 않는 내일을 위한 분홍색 크레파스를 들고

책임과 의무로 레이어드된 상하의를 걸치고

각막과 고막를 태우는 미세먼지와 자외선을 맞으며

말할 수 없는 비밀과 말해도 소용 없는 팩트를 안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가면을 쓰고

아무렇지 않은 척 즐거운 척 괜찮은 척

행복을 원하는 척 뭔가 아는 척 깨달은 척

듣고 이해하는 척 위로를 잘 하는 척

그렇게 지낼까요


이번 글은 일기인지 편지인지 모르겠어요

편지는 주로 요로 끝나는 문장을 쓰곤 했는데


읽히는 나와 실제 쓰는 나는 조금 달라요

생각의 단면이 갈변되기 전에 옮기지만

환자복을 입고 창살 달린 벽 앞에서

쓰고 있는 건 아니죠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오프라인으로 마주한다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재미있는 이야길 나눌 거예요.

누군가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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