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

by 백승권

우리는 결국

긴 터널 끝의

빛을 상상하며

걷다가 걷다가

벽에 부딪힌다


그 벽에 문을 그려도

열리지 않고 아무리

발과 주먹으로 깨도

벽은 벽의 자존심을

깨뜨리지 않는다


견디지 못한 몇몇은

피멍이 들 때까지

심장을 치다가 죽고

피눈물 흘리다 죽고

배고파서 죽고

잠시 졸다가 죽는다


터널 속을 여전히 서성이는

자들은 왜 살아있는지 모른다

왜 아직 죽지 않았는지

한때는 그토록 빛을 갈망했건만


어둠 속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갑작스런 빛에 눈이 멀 수 있다

그런 농담 아닌 농담에 더 이상

아무도 웃지 않아

모두 죽었거든


혼자 남은 자는 이유를 모른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가만히

보고 싶어요 라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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