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O 화이트 로투스 시즌 1 ~ 시즌 3
부자라는 말은 너무 지겨워요. 돈이라는 말에는 만인의 선망과 피땀눈물이 같이 묻어 있고 그래서 부자라는 말은 좀 더 양면적으로 다뤄지기도 해요. 일부 부자들은 이 부자라는 이미지를 같은 가격의 다른 핏으로 입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여요. 내가 입은 옷은 좀 달라. 같은 브랜드 같은 시즌 같은 가격 같은 품번이지만 아무튼 내가 입었으니 달라. (내가 생각하는) 난 남다르고 특별하니까. 이런 심리들. 다들 나다운 부자를 꿈꾸고 그게 뭐든 럭셔리 리조트에 비슷한 가격을 지불할만한 이들이 되어 하나의 테두리로 묶이게 됩니다.
자신이 부자라는 자각은 개별적이죠. 부자라는 단어를 경멸하는 부자도 있어요. 이들에게 부자는 착취와 불평등을 조장하는 범죄집단처럼 인식되는 이미지이기도 해요. 그래서 '뻔한' 부자들과 다른 태도를 지니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공들여요. 누가 보든 그렇지 않든 스스로 의식합니다. 하지만 그가 백인이라면 이런 포지셔닝조차 너무 쉽지 않아요. 백인은 여러 인종 중 하나가 아니라서. 나머지 모든 인종을 합해도 백인 하나에 미치지 못합니다. 여러 정치사회적 상황과 특히 반영하는 미디어에서. 실질적인 특권적 지위를 지닌 인종. (*백인 역시 무수한 스펙트럼으로 구분될 수 있지만 이해의 편의를 위해 피부색으로 상징되는 백인으로 지칭합니다)
부자와 백인이 더해진다면? 슈퍼 특권 계급.
이건 그저 제3자의 시선이 아니에요. 누구보다 자신들이 그걸 알아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가졌고 무엇보다 그런 조상들에게서 그렇게 태어났어요. 자연 현상의 일부 같은 거죠. 하지만 그게 얼마나 유리한 지위인 줄 알아서 견고히 지키고 누리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커다란 눈덩이가 구를수록 더 커다랗게 되듯 더 커다랗게 굴러가며 지면을 뒤덮기 위해 쉬지 않아요. 게다가 발언권도 많아서 인간적인 면모를 더 많이 노출할 기회가 많아요. 그리고 소수자들의 성과를 언제든 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게 가난이든 겸손이든 가족중심주의 자아 성찰이든 심지어 자신들도 그걸 알아요. 소수의 플랜이든 다수의 동조든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거든요. 이 모든 과정에서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일부터 보이지 않는 일까지 모조리 컨트롤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견고하게 지키고 확산시키려고 해요.
부유한 백인 무리들은 아까 잠시 언급한 하와이, 이탈리아, 태국에 지점을 둔 럭셔리 리조트 화이트 로투스로 모이게 됩니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이. 여유로운 웃음과 가볍고 느슨한 옷차림으로. 부유한 백인이라는 특권 계급들이 모여 아침엔 조식을 먹고 점심엔 수영을 하고 저녁엔 술과 공연을 즐겨요. 그리고 누구는 가족 몰래 성매매를 하고 누구는 같이 온 가족 전체를 독살하려 하고 현지인들을 사주해 가족을 죽인 후 재산을 가로채려 하고 투숙객들끼리 밤새 술, 마약, 섹스를 합니다. 나열하다 보니 살인, 마약, 성매매가 대부분이군요.
기억나는 캐릭터가 있어요.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배우자를 가해자로 여기지 않으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자기 세뇌처럼. 당신은 가해자가 아니다. 그러면 내가 피해자가 아니게 되니까. 이런 식으로. 나는 지옥에서 사는 게 아니야. 당신을 악마로 인식하지 않으면 되니까. 이런 식의 해석.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는 이 시도가 얼마나 서글프고 어리석은 자기기만인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거의 모든 시간을 쇼윈도 부부를 연기합니다. 마치 연기가 실제이고 실제가 잠시 쉬는 시간의 연기인 것처럼. 혼자 있는 시간 잠시 진짜로 돌아오지만 어느 누가 그걸 진짜 인생으로 인식할까요. 자신이 감지하는 자신의 삶과 타인들에게 전시 노출 평가되는 일상 중 어느 것이 진짜일까요. 23시간을 타인의 시선 앞에서 살고 1시간을 혼자 울고 있다면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연극일까요.
하와이 원주민은 자신들의 영토를 강탈한 조상을 둔 백인들 앞에서 불쇼를 하고 춤을 춥니다. 악랄한 컴플레인에 보복하려는 리조트 매니저는 고객의 여행가방에 똥을 싸고 나이 많은 애인의 영혼까지 깊이 사랑했던 어느 여성은 애인의 불운한 삶에 엮여 총에 맞아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작가 업무를 하는 여성은 자신을 트로피 와이프로 생각하는 남성과 이혼하고, 엄마의 유골을 바다에 뿌리려던 여성은 물고기 밥이 되기도 하며 탁월한 비즈니스 능력으로 부자가 된 아시아 남성은 자기 아내가 (자기보다 매력적인) 백인 남성과 잤다는 콤플렉스에 내내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게 세상 모든 백인 부자들을 상징하는 전부는 아니겠죠. 이건 HBO 드라마고 한정된 에피소드 안에서 캐릭터와 결말이 정해져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하나 느껴져요. 이 드라마 역시 백인들이 스스로를 구경거리로 만들며 돈을 버는 방식의 일부이지 않을까 하는. (경제적 계급 상승을 꿈꾸는 중산층 중심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부유한 백인들을 향한 비평까지 미디어 상위 그룹에서 컨트롤하기 위해 여기까지 손을 쓰는 건 아닐까 하고. 자신들을 캐릭터화시키고 사건 사고를 더해 치부를 드러내며 이를 통해 수익을 벌 수 있죠. 이런 리뷰까지 결국 그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퍼즐 조각인 셈이죠. 시즌3의 태국 리조트가 가장 가고 싶었어요. 물론 예고도 없이 휴대폰을 압수한다거나 야자수에 독이 들어 있다거나 연못에 시체가 떠오른다면 별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