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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어둠 속에서 빛을 설계하다. 브루탈리스트

브레이디 코베이 감독. 브루탈리스트

by 백승권

참 힘든 삶이었죠

그래도 살아남았네요


난 여기서 외롭게 지내고 있단다


가엾은 사람 그동안 어떤 일을 당하고 산 거야?




애드리언 브로디가 해석한

라즐로의 215분을

한 인간의 삶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기구하구나... 당시 모두의 삶처럼'

정도일 것이다


그는 감각과 지성과 노동력을 더해

한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명징히 존재할 수 있는

과감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드는 자였고

시대가 기억하기로 인정받은 자였다


다양한 악조건에서 그는

이름 없이 죽을 수 있었지만

수많은 불운과 행운 속에서

자신만의 스타일과 집념으로

지상과 하늘 사이를 채울 수 있었다


(부자와 비 유대인으로) 잘 태어나는 게

가장 뛰어난 능력이었고

범접할 수 없는 실력과 명성은 그다음이었다

라즐로는 건축가라는 타이틀 안에서 만큼은

완전히 독립적이며 자유로웠다

아무도 건축가로서 그를 영어 억양 어색한

유대인 생존자로만 대하지 않았다

존중과 경탄이 기본적으로 주변의 공기를 채우며

그를 거장으로 존재하게 만들었다


초라한 궁핍과 단절된 가족,

이민자 신세와 마약 중독 속에서

자신의 건축 작품 앞에서만큼은

가장 당당하고 근사한 위엄을 드러냈다


라즐로는 자신이 지휘하는 건축물에 대해

완전히 장악하고 싶었고

납득할 수 없는 수정 요청을 받아들일 바에

자비를 들여서라도 견지하고 싶었다

그에게 건축이라는 세계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라즐로라는 존재의 연장,

세계의 확장, 자기 자신 자체였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라즐로의 생애를 옮기기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위태로운 재료들로 축조되었는지

긴 시간을 공들여 담아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박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를 쓰고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상황에서

부서진 얼굴을 치료받지 못해

평생 마약 중독에 빠지고


고국에서의 업적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최하층 노동자의 삶을 전전하고


웃고 떠들고 놀던 믿고 아꼈던 지인에게

망한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으며 배반당하고 쫓겨나고 연을 끊고


끝나지 않을 듯 오랫동안 기다린 가족은

영양실조로 다리를 잃고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발견하고

최고로 인정해 준 사람에게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황에서

성범죄를 당하고


세상 누구에게도 사연 없는 삶은 없다지만

라즐로의 부서진 얼굴 위로 지나간 시간과 사건들은

하나의 인간이 아닌 한 시대를 움켜쥐었던

긴 어둠이자 얼룩진 그림자였다


그는 흠결이 없는 자가 아니었고

영화는 그를 변호하지 않는다


기대했던 프로젝트가

자본과 욕망, 질투와 시비, 사건과 사고에

얽히고 멈추고 재개되며 처음 구상했던

외형과 내면을 완성해 나갈 때

라즐로는 무너지고 있었다

그의 정신과 영혼마저

도구와 재료로 소진했기 때문에


자기 일에 몰입한 자의 분노가 드러날 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어떤 감정은 이해를 바라며 표현되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 쌓아 올려지다가 어느 순간

모두의 눈에 띄는 유리돔을 올렸을 뿐


고통 하나로만 번역할 수 없는 삶

그가 설계한 빛의 십자가는

지금도 누군가의 기도를 감싸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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