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호 원작. 강윤성 감독. 파인: 촌뜨기들
바다에 나가려면 적을 만들지 말아야지
웬수가 되면 누가 먼저 물고기 밥이 될 거 같아?
그러다가 디져 불어
고렇게 겁나 오래 참다 디져 불어
아, 조져 불었네, 씨
난 배에서는 아무도 안 믿는다
에휴, 씨발, 에휴
하...이 씨부럴
내가 엔간허믄 참아볼까 혔는디
나가 그냥 디져 불든가 해야지, 씨
저 미친 새끼가 왜 총을 가지고 나갔을까이
야, 이 개새끼야! 야, 이 씨부럴...
범죄 모의와 실행에 대한 오랜 궁금증이 있다. 단순한 계산법이다. 리스크가 너무 큰데 과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다는 점이다. 범죄 핵심 속성 상 막대한 피해와 피해자들의 발생은 제외하더라도 범죄라는 게 결국 계획대로 성사되지 않을 경우 구성원들 일부 및 다수가 죽거나 다치거나 긴 시간 감옥에 가게 될 위험을 감수하는 건데 결과적 위험의 감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범죄를 위해 일반 비즈니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아이템을 선정하고 전문가를 모으고 수차례 미팅을 하고 유경험자 조언을 수집하고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고 기획 회계 HR 물류 등의 전 과정을 챙기고 구성원들끼리 위계와 역할을 나누고 동종 범죄자들끼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당장 대충 떠올려도 이 정도인데 아니 이게 대체...
합법적인 비즈니스에도 엄청난 피로와 시행착오, 갈등 요소가 뒤엉켜 성패를 가늠하기가 어려운데 범죄에 동일한 수준의 과정과 노동을 쏟아붓는 게 수지타산이 맞는 일인가. 물론 좋아 어쩔 줄 몰라서 회사일을 하는 사람이 드물듯이 범죄 모의 및 실행에 깊고 오랜 의미를 부여하며 참여하는 이들도 없고 일반적인 일처럼 다들 사연은 있겠지만 이게 그저 먹고 살려고 돈 벌기 위해 사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듯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범죄를 한다... 이렇게 납득을 해야 하나.
범죄 구성원들의 사연과 의도에 대한 심도 높은 분석까지 이를 수는 없지만 범죄 추진 과정이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피로도가 높고 변수가 많고 복잡하며 결과적 수익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요소도 너무 큰데 심지어 이미 일어난 범죄에 대한 수많은 처벌 사례가 공개되어 있는데 계몽과 학습, 개선의 여지가 미비하게 여겨진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야기한 부분은 2인 이상의 다수가 모의하고 추진하는 범죄에 대한 이야기긴 하다. 뉴스, 영화, 드라마 등에서 노출되는 범죄 모의 장면을 보면서 와 저렇게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실패하면 죄다 감옥 갈 일을 시간과 노력, 인간관계의 갈등과 피로도를 감수하고 있다니. 신기했다. 여전히 모르겠고. 합법도 빡쎈데 불법을 저렇게까지.
디즈니플러스 파인도
비슷한 관점과 어이없는 표정으로 봤다.
원작은 윤태호 작가 작품 중
야후와 더불어 최고라고 여기고 있었다.
목포로 사기꾼들이 몰린다. 신안 앞바다에 잠겨 있다는 중국 원나라 때 도자기를 캐러. 정부가 한번 왔다 갔고 잠긴 수량은 짐작할 수 없다. 경매에서는 개당 5백만 원(1977년 기준 현재는 약 1천만 원)에도 거래되고 있었다. 이런 물건 보물선 안에 박스 채로 수만 점이 쌓여 있다면? 먼저 줍는 놈이 임자라는 계산이 선 자들이 모이고 있었다. 자기 앞날은 계산 못해도 돈은 세고 싶은 자들이.
서울 대기업 회장부터 골동품 감정사, 사기꾼, 선장, 잠수부, 죄수, 경찰, 레슬러, 체육관 관장, 목포 건달, 좀 거들고 품삯 받겠다는 동네 사람들까지, 죄다 바다 밑 도자기가 돈 된다는 소릴 듣고 너나 할 것 없이 모여들고 있었다. 쩐주에게 의뢰받고 위치를 안내받고 사람을 모으고 배와 트럭, 창고를 구하고, 물건을 건질 그물과 도구를 사고... 그리고 모여서 싸운다. 죄다 날 서 있는 남자들이라. 시키고 따르려면 서열이 중요했다. 싸우고 욕하고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다시 싸웠다.
수십 명이 모이고 흩어지며 각자 다른 생각으로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려니 문제가 안 생기면 그게 더 문제였다. 사람은 모아도 필요한 일을 할 애들이 없고 사람을 구하면 돈이 없었다. 돈을 더 구하려고 하니 시간이 없고 겨우 배를 띄웠더니 위치도 모르겠다. 위치를 알았더니 거기가 아니었고 위치를 알고 나니 물살이 세다. 씨부럴... 이미 엉켜 있던 관계 속에서 사고로 위장한 살인이 일어나고 그다음 날 또 모여서 도자기를 건져 올리는 데 혈안이 된다. 또 싸우고 욕하고 담배 피우고 욕하고 술 먹고 욕하고 또 싸운다. 아사리판이다.
오죽하면 가짜 도자기 수백 개까지 미리 바다에 수달 담가놓고 유물처럼 만들어 놨다. 가짜를 팔아본 사람의 솜씨. 판이 커지고 복잡해지고 얽히고 산소를 공급받는 호스가 불량이라 사경을 헤매고 밤바다에서 싸우다 돌로 머리를 깨고 바다를 그토록 죽도록 두려워했던 자의 머리를 망치로 깨부수고 감금과 억압을 못 이기고 팔목을 긋고 총을 발사하고 엔진이 터지고 화상을 입고 감옥에 갇히고 음식에 독약을 타고 사무실에 휘발유를 붓고 트럭이 추락해 폭발한다. 누가 살아남아 승자가 되었는가. 모두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었지만 대부분 죽거나 다쳤다. 이건 범죄니까.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신념으로 타인의 모가지를 따는 삶, 그들이 메이드 인 차이나에 목을 걸고 뛰어들었고 후손들이 칭송하며 건져 올릴 유물은 되지 못했다. 화장터에나 갔으려나. 도자기는 불 속에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겠지만 그들은 뼛가루로 날아갈 텐데.
비장하지 않은 모습들이라서 인상적이었다. 갓 잡은 물고기 능숙하게 배 가르듯 농담처럼 사람을 죽이는 모습들 속에서 누적된 고단함이 느껴졌다. 에휴 이것만 하고 집에 가서 쉬어야지... 잡히지 않는 대박을 위해서라면 살인죄도 그저 일상이었다. 평생 얼굴 본 사람도 아무렇지도 않게 수장시키며. (선장도 아니지만) 선장은 얼마나 많은 이들을 그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을까. 제발 살려달라는 지인에게 잉 알았네잉...(금방 끝내니께 좀만 참아보드라고...) 이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