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슈레이어 감독. 썬더볼츠
다 하자투성이 루저들이야
인간의 탈만 썼지 사회성은 개나 준 인간들
공허함을 벗어날 순 없어
고통의 방이 이어진 커다란 미로 속으로
여기서 죽음은 없어
고통만 심해질 뿐이야
우린 언제나 혼자일 거야
늘 그렇듯 명령에 따라
열심히 사람을 죽인다
아마 생계를 위해서겠지
즐기는 일 같지도 않던데
표정이 없다. 이건 그냥 일이고
살인과 사망은 업무상 과정과 결과니까
버림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주
모르는 어른들에게 훈련을 받다가
친구를 죽게 했다. 훈련의 일부였다
친구가 죽을 걸 알고 어디론가 불렀고
어디론가 온 친구는 계획대로 죽었다
이건 훈련이잖아 이건 임무잖아
하지만 실제로 친구가 죽었고 지금은
실제로 사람을 직접 죽인다
인간에겐 어린 시절이라는 게 있다
각자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고
망각이라는 자동 삭제 시스템도 있지만
어떤 기억은 좋든 나쁘든 영구 저장된다
부모가 죽거나 부모에게 죽도록 맞거나
부모들끼리 죽도록 때리거나
부모들 중 약한 쪽이 죽도록 맞거나
자신이 맞거나 형제자매가 맞거나
가족들에게 영구적으로 버림받거나
흔히 말하는 상처라는 게 생긴다
달궈진 인두에 지져진 피부 같은 기억인데
상처라고 하니까 무슨 약 좀 바르면
낫는 것 같은 어감이다 그럴 리 없다
어릴 적 나쁜 기억은 평생 재생된다
아무것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무력한 자신의 한계를 책망하며
떠올릴 때마다 어둠 속에 갇힌 듯 자욱해지고
깨닫게 된다. 이때 이후로 전혀 자라지 못했구나
여전히 이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조작된 기억으로 덮어
평생 행복한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행복해지려고 난리를 피운다
덮어도 없던 게 되는 게 아니지
나는 별 거 없고
내 삶도 마찬가지라서
누가 좀 제대로 들여다봐주고
칭찬도 해주고 존재 가치도 일깨워주고
뭔가 계속 내가 대단하거나 필요하다고
세뇌시켜 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된다
인정 결핍
애정 결핍
결핍은 약점이다
약점은 드러난다
상대는 간파한다
외면은 소용없고
부정도 마찬가지
루저는 모여봤자 루저들일 텐데
어벤저스라고 우기니까 그러려니 한다
마이크 쥔 권력자가 아무 말해도
그걸 반박할 의지도 없다
앞으로 뭉쳐서 무얼 하든 과거가 바뀔 일은 없다
하지만 과거가 바꾸지 못했던 현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현재로 바뀔 것이다
가능성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렇게 미래는 바뀌겠지
바뀐 미래가 다시 과거로 누적되고 누적되어
새로운 현재에 영향을 주고
새로운 현재는 다시 새로운 과거가 되어
어둠과 거리를 두게 만들 것이다
물론 트라우마라는 건 물리적 거리의
의미가 없고 어떤 변수와 계기로든
바로 비극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숙주처럼 종속되어 죽음의 늪으로
끌고 가며 산자도 죽은 자도 아닌 것처럼
방치하진 않게 할 것이다
기댈 것 없는 삶
빛이 사라진 현재
착각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멀어진 영광
길을 잃은 시간
그리고 복수 또는
권력 획득을 통한 상쇄
겉보기에 그토록 강력해 보여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처럼
바스러질듯한 연약함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겉과 속 모두
약한 자들에게 자신의 힘을 나누며
세상에 기여하고 자멸 가속에 브레이크를 건다
영화는 허구의 조립품이기도 하지만
거울이며 매뉴얼이기도 하다
내가 지우지 못한 평소 설명하기 힘든
내면을 완전하진 않아도 따라 그린듯한
대사와 장면, 표정이 썬더볼츠에 있었다
선택하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이
필름처럼 이어진 채 서서히 끝나가는 삶 속에서
섣불리 결론을 단정 짓고 싶지는 않을 때마다
옐레나(플로렌스 퓨)의 공허에 잠긴 표정을
종종 떠올리게 될 것이다
바꿀 수 없고 바뀌지 않는 과거의 중력 속에서
만인 앞의 영웅 놀이라는 연극을 멈추지 않으며
이렇게 라도 내가 조금은 소중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라도 인정받으며
자신을 연민하고 타인의 칭찬을 수용하며
이를 악물고 피를 흘려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살아낼 것이다
살아 그렇게라도
의미 부여에 너무 몰입하지 말고
희망 같은 거 없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