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살아
졸음을 참고
정신을 잃고
눈은 감고
잔 거 아니라고
웅얼거리며
익숙한 새로움과
새로운 익숙함 사이에서
더 유리한 쪽에 서려고 재다가
어느 것도 아닌 무가치한 애가 되었지
불특정다수를 유혹할 줄 알아야 돈을 벌텐데
아직도 뭐뭐에 미치면 돈이 따라온다는
말과 글을 보려니 미쳐버리겠어
저녁 먹으러 처음 간 넓은 식당에서
텅 비었을 땐 무표정이었던 직원의 표정이
의자가 점점 채워지며 일그러진 걸 볼 때
주말에 일하는 노동자는
평일에 일하는 노동자를 먹이는구나
모든 날에 일하는 노동자는
누가 먹이고 살리나
졸음을 누가 깨우나
운전은 누가 해주나
생계는 누가 지키나
(intermission)
살려고 사나
죽으려고 죽나
목적 있는 생존은
명분 있는 포기보다 우월한가
진정성은 수용자의 불안을
어디까지 진정시키나
모르는 저 너머에
모르는 저 뭔가가
환하게 웃으며 기다리고 있다면
저 너머로 넘어가
저 뭔가를 여기로 데려오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늘 별로겠지만
그렇다고 내 선택까지 모조리
값싼 것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아
의무와 의절 사이를 번민하다가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홀로 빌다가
새벽이 밝기 전에 기절했다가
납덩이를 일으켜 비누칠을 하고
오늘은 덜 길들여진 척하고 싶은데
아무도 관심 없는 고뇌에 눈을 담그다가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사랑 외에 힘든 것은 거의 없으며
있다면 사랑이 아닐 것이며
그토록 힘들면 그것 역시
사랑이 아니라서
마지못해 사랑을 선택하는 척한다
어차피 그랬을 거면서
전부가 아닌 적 없었어
겨우 살지만
그래도 너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