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 수유천
학교는 어쩔 수 없이 무지한 자들이
덜 무지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나
기대를 깨며 가르치는 자들이 더 무지해 보일 때
인간은 역시 인간을 배우기 전보다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 수 없는 진리에 닿으며 아득해져요
술판 벌이며 듣기 좋은 소리 몇 마디 나누다가
술잔 나누며 맘에 없는 소리 몇 마디 나누다가
안주 구우며 영혼 없는 칭찬 몇 마디 나누다가
이익 관계가 무너지면 참아왔던 선을 넘어요
여덟 명의 사연이 너무 많아요 아무리 그래도
동시에 세 명에게 개수작 부리면 안 되시잖아요
자신이 맡은 역할과 책임을 잊으면 안 되잖아요
뻔뻔하게 결혼하자고 헛소리 하면 안 되잖아요
전임(김민희)은 행사 준비가 위기를 맞게 되면서
자신의 위태로운 지위를 지켜내기 위해
외삼촌 시언(권해효)을 불러 촌극 지도를 부탁합니다
전임에게 학교는 복기할수록 기이한 과거를 딛고
완전히 새로운 방향과 움직임으로 시작을 하려는 곳
전임은 종일 바쁘고 모두에게 헌신적이며 사려 깊고
생각이 많고 의미가 담긴 작업에 긴 집중을 쏟습니다
그리고 그의 노력을 위태롭게 만든 이들에게
있는 힘을 다해 윽박지르며 의견을 전하거나
염치없는 부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합니다
학교에는 서열이 있고 서열은 곧 정치라서
전임은 비서에 가까울 정도로
상냥하게 모든 비위를 다 맞추지만
결정적일 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침묵뿐
뒤에서 속닥거리는 비아냥 뿐
전임은 매일 술만 먹는 엄마도
시언에게 추파를 던지는 교수도
그와 잔 시언도 모두 별로지만
수유천을 유심히 보며 작은 붓과 팔레트로
그릴 때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수유천에서 마침내 비밀을 알아내요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진리를
물소리보다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너희에게 연연할 일은 결코
없을 것 같다는 결연하고 다정한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