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 다른 물질이라고 해도

by Glenn

우리는 서로 다른 물질이라서

서로가 그걸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고

차라리 그걸 모르고 가까워지기가 너무 쉬웠어

우리가 서로 다른 물질이라는 걸 몰랐을 적에는

우리는 우리가 같은 물질인 줄 알고

같이 흐르다가 같이 사라지는 줄로만 알았어

우리가 서로 다른 물질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언젠가 분리되어 서로가 모르는 동안

사라지게 될 거라는 걸 예비했을 텐데

우리는 우리가 같은 물질이라고 여기며

세상의 모든 약속을 다 지킬 수 있을 것처럼

우리가 영원할 듯이 서로를 잡아당겼어

세상의 모든 공간을 우리 것이라 여기기도 했고

세상의 모든 문장을 우리 입처럼 쓰려고도 했고

세상의 모든 감정을 우리 눈처럼 비비려고 했어

우리는 영원을 믿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믿으면 영원의 가능성이 실현될 것처럼

우리는 우리를 확신했어, 순간을 전부라 여기고

아낌없이 하루를 사용했어, 낮과 밤의 고요를 넘어

우리는 팔을 뻗어 우리의 눈을 감기고

우리의 등을 감고 목덜미를 감싸려 해

우리가 서로 다른 물질이라는 걸 몰랐을 적에는

우리가 어떤 물질로 이뤄졌는지 파악조차 안 했을 적에는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그저 우리가 우리에게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이 필요하고 가져다주고 같이 지낼 수 있는지

우리는 우리에게 우리뿐이라는 듯이

우리를 열렬히 응원했어, 우리의 능력이

우리를 마주 보며 달려오는 게 전부라는 듯이

우리를 기다리고 우리를 염려하고 우리에게 속삭이고

우리와 같이 떠나고 우리와 같이 오고 우리가

어떤 불길을 지나 어떤 풍랑을 넘어 어떤 해일을

벗어날 수 있을지 우리는 우리 밖에 없었어

우리가 서로 다른 물질이라는 걸 몰랐을 적에는

우리는 앞으로도 우리가 서로 다른 물질이라는 걸

알지 못할 거야, 그걸 결국 알게 된다고 해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리가 물질이든 뭐든

우리를 열망하며 우리를 끌어당기게 될 거야

우리가 우리를 뭐라고 부르든

우리는 우리를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우리는 우리에게 갈 거야

우리가 우리와 함께 우리가 있던 곳으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우리 만의 세계로

우리가 서로 다른 물질이라고 해도

우리는 우리를 바꿀 수 없어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도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어

우리가 된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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