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오는 게 아니었어
끝은 원래 그 자리에 늘 있었고
내가 거기로 가면 그때가 끝이라는 걸
아득한 저어어 먼 곳에서 오는 게 아니었더라고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먼지 한 톨 나부끼지 않더라니
아니면 오다가 거기서 자릴 잡았을 수도 있어
이토록 삼엄하게 경계할 줄 몰랐을지도
실루엣과 질감을 감지하려는 게 아냐
끝은 그렇게 존재하지 않아
끝은 씨앗을 삼키고 알아서 자라나
눈꺼풀을 자르고 심연으로부터
지각을 뚫고 솟아오르는 콩나무처럼
뇌를 부수며 바깥으로 달아나려 해
끝은 감정을 가진 식인 애벌레 같아
애처롭게 울면서 뼈를 갉아먹고 장기를 삼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신경을 끊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서 기도를 막아
안으로 흐르는 피와 눈물을 마시며
노래를 불러 혀를 삼키며 고막을 찢으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으쓱거려 찡긋거리며
고통에 떠는 사람을 좋아해
슬픔을 묻히며 뒹구는 걸 좋아해
허기를 못 참고 아무거나 탐식해
숙주를 저주하며 기억을 조작해
늘 다른 시간에 움직여
예측하지 못하면 더 힘들다는 걸 잘 아니까
괴로웠는데 잘 키우려 했어
길들여지지 않을수록 확신이 들었어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구나
그렇게 굴복시켜서 더 커지려는구나
나를 삼켜서 내가 되려는구나
죽어도 인지하지 못한 채
끝나지 않는 상태를 끝이라고 불리길
숨이 닿는 모든 곳에 화상을 입히며
행복과 장수와 건강과 희망을 바라겠구나
시간과 물질의 최종 단계가 아니라
완전한 제정신이 들었을 때
사람이 사랑이 될 때
신을 찾아야 할 때
그때가 그때겠구나
그때 만나요 우리가 끝에게 도달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