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퍼맨 감독. 인필트레이터:잠입자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실제 남조선의 표면적이 축소되었을 리 없다. 주변에 온통 하늘을 가릴만한 덩치의 사람들로 점점 채워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행동반경이 작아지긴 했지만 물리적 면적과 거리로 따지기엔 부족하다. 내가 커진 것도 아니고 내 지위가 높아진 것도 아니다.
이해와 상상의 정도가 협소해지고 있다.
책과 영화와 음악으로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다. 간접경험의 거리는 늘어났지만 그것이 지성과 교양의 증폭을 보장하지 않는다. 난 그저 세상에 선보인 콘텐츠 중 일부를 보고 읽은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이지 이를 통해 가치관의 컬러를 뒤집을 만큼 커다란 계기로 만든 사람이 아니다. 나는 언제인가부터 내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매일 듣는 버스의 엔진 소리와 덜컹거리는 밤길, 보이지 않는 별, 낡고 누추한 뒷모습들, 한숨과 졸음의 표정들, 말을 걸어도 답하지 않을 듯한 피로가 역력해 보이는 그림자 같은 흉상들 속에서 부정적인 자각과 오랫동안 놓지 않았던 일부를 포기해서도 아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거나, 원래 이만큼 정도의 성장폭만 지녔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싶다.
편협해지는 이해와 상상의 깃털들. 밥의 선택을, 아니 밥의 직업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고난에도 신뢰를 잃지 않는 시선을 지닌 아내와 무슨 짓을 해도 예쁘고 귀여운 자녀들이 있는, 밥(브라이언 크랜스톤)이란 남자가 가지고 있는 직업이란, 그 직업이 수행해야 할 미션이란, 위장 잠입.
결과적으로 연간 수천조에 이르는 돈세탁을 자행하는 마약범죄조직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금융과의 검은 고리를 캐기 위해, 밥은 목숨을 걸고 위장 잠입을 시도한다. 그저 사업가로 위장해서 중간에서 비위를 맞추다가 이때다 하고 현장을 덮쳐 일망타진하는 사이즈가 아닌 미국을 마약에 물들여 죽이고 있는 콜롬비아 마약조직과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위해선 어떤 살인도 불사하는 금융 권력가들 사이에서 시시각각 피범벅이 될 위험을 무릅쓰고 껄껄껄 비위를 맞춰주고 범죄의 일부가 되어 더 큰 범죄의 고리를 절단하는 일이었다.
신체를 제외한 가진 정보의 모든 것을 위장한다. 슈트를 빼입은 채 거들먹거리는 말투와 기분을 맞춰주는 농담, 온갖 향락과 인간적이고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가며 더 깊숙이 더 큰 범죄의 터널로 잠입한다. 하나라도 퍼즐이 어긋난다면 즉시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참살당한다. 영화에 언급된 그 방식을 차마 세세히 옮기지 못하겠다. 죽음보다 더 비참한 상태로 신체를 훼손한 후 이를 가족들에게 노출하고 가족을 눈 앞에서 죽이고 다시 고문 끝에 죽이는, 업계에 널리 회자될 만한 산채로 서서히 죽이는 처형을 각오해야 한다. 이건 거대 마약범죄조직들의 이미 익숙한 유희, 대상이 되는 이에겐 지옥보다 못한 결말이다.
차마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다. 인간의 정의심이란 어디까지 감내하게 만드는 걸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인류애를 향한 고도의 투지가 자기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잡을 정도로 경지에 오르는 걸까. 그저 맡겨진 일을 기꺼이 수행한다고 여기기엔 밥에겐 선택지가 있었다. 그는 그동안의 커리어를 칭송받으며 영예롭게 은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사자굴로 들어가려 사자의 탈을 썼다. 변수가 돌출했고 난데없는 살육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람을 죽이며 웃는 사람들 사이에서 밥은 극적인 피날레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위장 결혼식에 모두를 초대한다. 마약 유통업자들과 여기에 수반되는 막대한 금액을 위해 합법적인 경로를 만들어주는 은행가들.
어느 잠입 수사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브랜드 퍼맨 감독의 임필트레이터는 시종일관 아슬아슬했던 순간들로 점철되었음에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단단하고도 안정적인 엔딩을 맞는다. 하지만 실제 모든 잠입자들이 같은 결말에 도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내 몰이해의 부분은 이 지점이었다. 자신과 가족과 지인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런 직업을 위해 생의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에 대하여.
다양성에 대한 오픈된 입장은 견지하고 있지만, 이것이 결국 흉내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는 게 이럴 때다. 범죄와 목숨을 걸고 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빈번하게 마주하다 보니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하는 것이다. 왜 그러지 않으면 안 되었나. 물음을 확장하지 않을 것이다. 각자에게 각자의 신념과 사정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타인이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생의 많은 것을 할애해가며 살아가고 있음을, 아주 최소한만큼은 인지하고 있다. 그렇게 마약이 사라진 미국이 되고 은행이 가난해지는 세계가 된 것은 아니었겠지만, 거대한 악과 이에 저항하는 점과 점 같은 선들의 싸움이 계속 되어왔고 계속될 거라는 점만은 유효하겠지. 나의 상상력이 협소해지는 것을 경계한다. 이 영화처럼 여전히, 놀라지도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
이해할 수 없는 영화들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