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페리아, 마녀가 춤출 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서스페리아

by 백승권

바더 마인호프(안드레아스 바더와 울리케 마인호프)를 주축으로 적군파가 창궐한 1977년, 공연 준비 중인 베를린의 어느 무용 아카데미. 새로 입단한 수지는 단숨에 주연을 꿰찬다. 자리가 비었고 자신이 원했다. 수지는 실력으로 검증받는다. 의문의 죽음들이 이어진다. 무용 아카데미의 어둠을 감지하고 이탈하려는 자들은 사지가 뒤틀리고 뼈가 꺾여 튀어나온 채 죽는다. 수지(다코타 존스)는 들뜬다. 최고의 무용가 블랑(틸다 스윈튼)의 지도 아래 주연으로 서는 무대라니.


악몽이 이어진다. 의심은 증폭된다. 수사는 흐지부지 되고 공연일이 다가온다. 블랑은 핵심인물이었다. 공연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블랑은 공연에서 살아남은 자였고 수지가 희생의 제물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수지는 재능 있는 무용가였고 그 재능이 단숨에 피로 물들며 비명과 고통 속에 끝장날 수도 있었다. 블랑은 수지에게 만류의 의사를 표하지만 수지는 여유로운 미소로 답한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수지의 악몽 속, 다 꺼져가는 생명력으로 읊조리는 수미 엄마의 말에 의하면 수지는 탄생은 세상에 짓는 죄였다.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수지라는) 죄가 자라나 무대의 중앙에 서려는 거였다. 나신에 피 흘리는 듯한 복장을 한 채 무용수들은 정해진 동선에 따라 자유로운 몸짓을 펼친다. 수지의 동료 사라(미아 고스)는 무용 아카데미를 이끄는 정체를 의심하며 감춰진 통로에 잠입한다. 금단의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돌아오는 건 다리뼈가 피부를 뚫고 꺾여 튀어나오는 깊은 어둠 속의 비명과 고통이었다. 사라는 공연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고 이대로 사라진다면 공연도 망치고 의심도 증폭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나타나 쓰러진 사라를 끌고 간다. 사라는 무대에 선다. 감쪽같이 상처가 아문 다리와 동공이 상실된 듯 뜨고 있지만 어느 곳도 보고 있지 않는 눈동자와 함께.


공연은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밀실에서의 또 다른 공연, 피의 의식이 남아 있었다. 수지는 이끌리듯 열어젖힌 그곳에서 모두가 나신으로 기괴한 형태로 온몸을 꺾고 있는 현장을 본다. 그림에서 봤던 젊은 날의 블랑과 함께 있던 노인, 마르코스와 마주한다. 정신 나간 듯 사라는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고 있었고 나머지 무용수들은 발가벗은 채 괴상한 동작을 펼치고 있었다. 수지는 그 의식의 제물로 내정되어 있었다.


마녀들의 보스가 괴물처럼 숨어있다가 덥석 물어갈 것 같은 전래동화의 이미지라도 마구 펼쳐질 기세였다. 블랑은 보스에게 바칠 제물을 정하는 리더들 중 하나였고 수지를 차마 보낼 수 없어 다시 만류한다. 돌아가. 돌아가. 돌아가 제발. 수지는 미동하지 않는다. 블랑의 경거망동에 분노한 마르코스(틸다 스윈튼)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블랑의 목을 몸통과 떨어뜨려 놓는다. 분수 같은 피가 분출하며 모든 시선을 압도한다. 수지는 마르코스에게 다가가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내가 그다. 보스인 줄 알았던 어둠의 괴물을 수하처럼 부린다. 어둠의 괴물은 심판을 거행한다.


블랑에게 반대했던 자들은 머리가 터지며 죽어가고 있었다. 머리가 터지며 나온 피와 이미 뿌려진 피가 섞여 거대한 밀실은 피의 사우나가 되고 있었다. 대강당의 스프링클러에서 피가 뿌려진다면 저런 모양새일 거 같았다. 죽음이 예정된 자들은 죽고 죽음이 예정되지 않은 자들은 정신 나간 듯 기괴하고 빠른 몸짓으로 춤을 멈추지 않는다. 춤 좀 출 줄 아는 마녀들을 위한 댄스 클럽 개업식의 하이라이트 같았다. 과거의 상처를 안고 마녀의 정체를 탐색하러 왔던 클렘페러(틸다 스윈튼)는 발가벗겨지지만 죽지 않는다. 사실 목격한 그 장소에 발가벗겨진다는 것은 수치와 형벌보다는 유니폼에 가까웠다.


자신의 정체를 마녀들의 마녀로 선언한 수지는 피의 심판과 함께 살지도 죽지도 못한 무용수들, 사라와 페트리샤(클레이 모레츠)에게 다가간다. 원하는 것을 묻고 다정하게 원하는 것을 이뤄준다. 그들의 대답은 모두 당장 죽는 것이었고 그들은 수지의 배려로 원하는 바를 얻는다. 피칠갑 마녀 집단 댄스파티의 밤이 지난 후 겨우 살아난 클렘페러에게 수지가 찾아간다. 클렘페러가 평생을 그리워하며 알고 싶어 하는 안타깝게 이별한 지난 연인에 대한 진실에 대해 말해준다. 클렘페러는 오열하고 수지는 그의 기억을 지운다. 어떤 기억과 시각적 경험은 고통뿐이라는 걸 매일 밤 자신을 죄라 칭한 어미에 대한 꿈을 꿨던 수지가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죽고 사라졌지만 다음날 깨어난 어떤 이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왜 살아났는지 왜 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지하 괴물과 핏물이 가득 찬 밀실 위 바닥 위에서 춤을 연습하게 될 것이다. 오랜 시간을 지나 자신의 본래 자리로 돌아온 수지 역시, 자신을 이어 춤을 출 새로운 주인공을 물색하게 될 것이다.


어떤 영화의 메시지는 이미지와 대사에 함축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영화의 메시지는 이미지 자체로 전달되기도 하는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1977년 동명 작품을 재해석한 서스페리아는 후자에 가깝다. 맥락을 이어 붙이려는 해석은 오히려 감상을 방해한다. 기괴하고 혹독해 보이는 피의 숙청 댄스파티 장면에서 저 장면이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면 배우를 학대한 건 아닐까 하고 의심이 가기도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계적이고 기괴한 움직임들은 불편함을 넘어 메스꺼움까지 전달했다. 한편 모든 장면은 한 씬 한 씬 회화에 가까울 정도로 벼린 감각으로 제련되어 있었다. 특히 수지가 어떤 교감을 통해 블랑 앞에서 격렬한 춤사위를 펼치는 장면에서는 배우라는 도구가 어디까지 경지에 오르며 예술적 지위에 다다를 수 있는지 격정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틸다 스윈튼이 최소한의 움직임을 통해 분위기와 극을 장악하는 아우라를 뿜어낸다면 다코타 존스는 최대한 동작을 통해 시선과 감정을 압도하고 모든 중심을 자신에게로 가져온다. 수지와 블랑이 같이 있는 장면 속에서 불안과 혼돈의 상황 속에서 긴밀한 연대가 이뤄지는 방식을 읽을 수 있었다. 연약한 자들이 좁은 곳에 모여 보이지 않는 역사를 생성하는 동력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둘은 꽉 잡은 손과 손을 통해 보여준다. 어떻게 서로를 보호하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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