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미쇼 감독. 더 킹: 헨리 5세
희생 없는 승리는 없다.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하여 승리 전후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헨리 5세(티모시 샬라메)는 망나니였다. 누구도 그가 차기 왕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왕은 후보자가 선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전쟁을 멈추지 않으며 죽어가는 백성들에 아랑곳하지 않던 아버지가 죽거나 당연히 자기 차지가 될 거라고 여기던 동생이 죽으면 순서가 돌아온다. 적임자가 아니라 남은 자라서 왕이 된다. 왕족으로 태어난 게 누구 잘못도 아닌 잘못이다.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슬퍼할 시간이 없다. 전쟁이 코앞인데 누구를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운을 시험하기엔 수많은 군사들의 목숨과 국운이 위태로운 상황. 원하지 않는 자리에서 한 번도 하지 않은 결정들에 둘러싸인 헨리 5세는 개인성이 완전히 사라진 극심한 혼돈을 경험한다. 그리고 불안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전쟁 중이던 프랑스가 보냈다는 암살자가 자수한다.
헨리 5세는 좌시하지 않는다. 성을 무너뜨리고 일시적인 항복을 받아내지만 프랑스 왕자가 등장하고 전세는 다시 흔들린다. 대격전이 남은 상황, 전력만 보면 완패였다. 패배는 개인의 죽음이 아닌 국가의 소멸이었다. 헨리 5세는 자신과 어울리던 존(조엘 에저튼)에게 의지하려 하지만 그는 말이 없다. 그는 과거의 친구이자 영원히 섬겨야 할 왕에게 가장 두려움을 느끼고 어둠 속에서 빛의 실마리를 찾아 헤매고 있는 자에게 단 한 줌의 위로도 보태지 않는다. 헨리 5세는 1:1 결전을 통해 자신을 희생하려 하지만 프랑스 왕자 도팽(로버트 패틴슨)에게 조롱당한다.
존이 입을 연다. 갑옷을 벗고 싸웁시다. 왜. 무거우니까. 폭우가 쏟아지는 전장에서 존과 일부 병력은 전략의 선두에 선다. 숲에서 다른 군사들은 가벼운 차림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존이 진흙탕에서 사생결단하는 동안 헨리 5세는 친구와 마지막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너무 일찍 들어오지 마. 헨리 5세는 친구가 전쟁에서 사라지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때가 되어 전력 질주한 헨리 5세와 군사들은 철갑 입고 허우적대는 프랑스 왕자 팀을 진흙 속에 수장한다. 어리숙하고 유약한 영국 왕이 거둔 첫 승리였고 너무 큰 희생이었다. 존은 감은 눈을 뜨지 않는다.
여기에서 끝나면 그저 망나니가 왕이 되는 성장 서사다. 왕좌의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전투신과 프랑스와 영국 왕(자)들의 아름다운 외모로 충분했던. 영화 더 킹은 숨겨둔 카드를 펼치며 헨리 5세와 관객들에게 엿을 먹인다.
프랑스는 널 죽이려 자객을 보낸 적 없다. 이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평화를 얻은 백성도 왕위를 지킨 헨리 5세도 아니다. 애국과 충심을 위장하며 간교한 혀를 놀린 자. 오직 그 목적이 사리사욕에 있던 자. 그림자보다 더 가까이 왕을 보좌하던 자.
셀 수 없는 영국의 백성과 병사들이, 헨리 5세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충신이자 전사였던 존이, 그의 세치 혀로 시작된 전쟁 속에 사라졌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불탄 성, 죽은 자들, 이를 저지하려던 모든 노력들이 거짓말로 시작된 헛짓이었다. 헨리 5세는 꼭두각시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혈기와 패기만으로 다를 수 없는 권력을 쥔 채 전쟁과 전략에 골몰하는 어린 왕. 권력자는 따로 있었고 영국은 사유 재산처럼 해체되는 중이었다. 헨리 5세는 더 이상 여지를 주지 않는다. 반역자를 숙청한다. 자살은 먼저 간 존이 원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믿을 수 없는 자들 사이에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통치를.
영화 더 킹: 헨리 5세는 전쟁을 비웃는다. 전장을 뜨거운 피를 쏟는 사내들의 콜로세움이 아닌 꼭두각시들의 인형극으로 격하시킨다. 애국과 충성, 희생과 의리는 정략가의 사리사욕 앞에서 단 한 푼의 값어치도 되지 못했다. 도구, 카드, 한번 휘두르고 버릴 무기일 뿐. 왕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역사는 유머집이었다. 그렇게 생을 연명한 자들의 보도자료. 의미는 기억하며 부여하는 자들의 판타지일 뿐이다. 진실은 끝없이 추궁하고 의심하였을 때 비로소 너무 늦게 겨우 얻어진다. 알아냈다 한들 어떤 죽음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이렇게 무력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