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나이트 샤말란 감독. 글래스
믿음은 연약하다. 깨지기 쉽다. 다수라고 부르는 집단과 다를 경우 끊임없이 부정당하고 공격당한다. 주장을 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폭력적이거나 다수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격리될 수 있다. 사법절차가 필요한 감옥보다 정신병원 입원이 더 쉽기도 하다. 평생에 걸쳐 다른 주장을 부르짖어온 사람들 중에 후대에 회자되는 경우도 많다. 교수대나 전기의자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죽이지 않았어 라고 외쳤다는 연쇄살인범이라거나. 우리는 지금 몽땅 독약을 먹고 죽겠지만 사후세계에서 행복하게 다시 만날 거라는 사이비 종교의 집단자살 등. 이해하기 힘든 믿음에서 오는 이런 행위나 사건들은 절대다수와 다른 '믿음'이 얼마나 절대다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아둔한 자들이 신념을 가질 때가 가장 무섭다'라는 인터넷 밈으로 회자 및 확산되기도 한다. 믿음을 판단하는 일은 늘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 받아들이는 이들의 믿음에 대한 문제로 옮겨진다. 저자의 믿음을 믿을 수 있는가. 저 믿음을 믿을 수 있다는 근거가 있나. 그 근거는 믿을 수 있는가. 현대 문명사회의 규율과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데도 그저 놀랍다는 이유로 믿어야 하나. 불꽃놀이를 천국 개장 오프닝으로 믿어야 하나. 여러 기준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타인의 믿음은 그저 당신이 나의 혈육이고 친구이며 가까운 사이이니까 그것만으로도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건 돈과 지위가 아닌 믿음뿐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건 믿음이 아니다. 매너일 뿐.
어린 시절에 입은 트라우마에 기인한, 내가 슈퍼히어로일지도 모른다는 망상들. 다른 영화라는 또 다른 평행우주에서 지구를, 최소한 미국의 대도시라도 여러 번 구했던 자들이 나와 기인 행세를 하고 있다. 어벤저스의 퓨리(사무엘 L. 잭슨), 엑스맨의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이 모두를 속이고 자신을 의심하고 내 안의 나들과 싸우며 자신의 정체를 고민하고 있었다. 자신이 왜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이게 세상에 의미가 있는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성장한 이유가 있는지. 제대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수가 죽거나 다쳤고 의심하다가 외면했다. 엘리 스타이플(사라 폴슨) 박사 만이 유일한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결론짓고 있었다. 너희는 아니야. 너희는 슈퍼 히어로 같은 특별한 게 절대 아니야. 그냥 상처 받은 짐승, 약골, 다중이 일 뿐이야. 나란히 앉은 미스터 글래스, 괴력의 비스트로 종종 변하는 수십 개의 자아를 지닌 인간, 정의의 사도 데이빗 던은 얌전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는 의심했다. 자기 자신을.
미스터 글래스만이 의심의 방향을 자신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는 계획하고 준비하며 자신이 특별하다는 자신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했다. 그 방식은 위험했다. 사랑의 존재를 만인에게 증명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과 같아서. 히어로가 죽어야 히어로가 있다는 것이 알려질 수 있었다. 히어로가 죽는 현장을 만인이 지켜보며 아 히어로가 있었구나. 저게 히어로구나. 나도... 어쩌면 히어로일 수 있겠구나. 나의 다름이, 특별함이 될 수 있고 그것이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겠구나. 어쩌면 이 특별함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도 있겠구나. 나처럼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모를, 쓸모없는 존재도 없다고 여겼는데, 저들의 죽음을 보니, 나도, 저들과 다르지 않은 특별한 존재겠구나. 깨달음. 미스터 글래스는 죽음을 계획했다. 자신처럼 특별함을 지닌 자들을 깨워주기 위해. 자신을 산산조각 내어 타인들의 상처를 기웠다. 고통스럽고 초라하며 서글픈 죽음들이었다. 보통의 인간들보다 쓸쓸하고 차갑게 죽어갔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특별한 자들의 죽음을 보며 자신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까.
악당 세력은 고요히 세상을 움직인다. 실제 현실에서 그들은 악당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아까 죽은 세 사람이야 말로 범죄자에 가깝겠지. 악당 세력은 부와 지위를 가지고 세상의 변수를 차단한다. 그들에게 히어로 같은 존재는 위험한 심지이다. 불이 붙는다면 어디서부터 꺼야 할지 모를. 그들은 범죄를 차단한다는 명분 아래 히어로 꿈나무들의 등장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다. 대중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조작 가능하니까. 믿음 역시 조작할 수 있다. 히어로는 스포트라이트 없이 탄생할 수 없으니까. 악당 세력은 매번 전원을 내린다. 대중들이 인기척에 눈을 돌리는 곳엔 불빛도 히어로도 없다.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정 반대편엔 뉴욕 빌딩을 모조리 파괴하며 쑥대밭을 만드며 존재감을 온 우주에 뿜어내는 어벤저스가 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차별화가 뭔지 보여준다. 같은 대상을 두고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다른 지점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오랜만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만든 엑스맨(돌연변이)의 새로운 기원과도 같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