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기 나이트, 크고 아름다운 날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부기 나이트

by 백승권






결국 타고난 것들이 결정한다. 개인의 인생 전체에 미치는 후천적 노력과 학습을 간과하고 싶지 않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유무형의 자산들이 모든 성장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출발점, 노력의 한계, 사다리 차기 등등, 사사건건 일상과 순간을 괴롭히는 일들과 마주하다 보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 난 그 안에서 처음부터 갖지 못한 자로써 고통받고 있는 피지배계층으로 해석하게 된다. 결론 내리기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잠시라도 내 자리는 여기구나 라고 혼란스럽지 않아서.

에디(마크 왈버그)는 발견된다. 에디의 타고난 것이 주류를 이끌던 감독 잭(버트 레이놀즈)에게 발견된다. 그전까지 에디는 남창과 잡일로 먹고살고 있었다. 잭 감독은 에디의 성기 사이즈가 시대를 접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그를 새로운 포르노 영화에 캐스팅한다. 에디는 더크 디글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뭘 하든 이전보다 나았다. 그때까지 자신만 알아주던 보잘것없던 개성이, 세상이 추앙하는 스타성의 전부가 된다. 같이 연기를 하는 배우 앰버(줄리안 무어), 롤러걸 브랜디(헤더 그레이엄), 촬영 스텝들에게도 에디의 타고난 사이즈는 확실히 시대를 가르는 힘처럼 보였다. 모두가 그로 인해 유명해지고 신작을 계속 만들고 새 차를 뽑을 수 있었다. 에디는 하루아침에 부와 명예의 중심에 서며 포르노 업계의 슈퍼스타로 전성기를 누린다.

크고 아름다워 세상천지가 뜨거운 봄날, 계속될 줄 알았다. 모든 파티에 초대되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같이 사진 촬영 요구를 받고, 올해의 포르노 배우로 수년 연속 선정되고, 거대한 저택을 사고 거실과 방안을 값비싼 그림과 명품 브랜드 가구, 조형물로 채우고, 누가 봐도 시선을 멈출 엄청난 스포츠카를 사고... 포르노 영화 속 더크 디글러가 된 에디의 자아는 부풀고 팽창하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모든 순간 눈부시고 있었다. 그리고 미디어 환경과 시장이 바뀌고 있었다.

극장의 시대가 끝나고 있었다. TV의 시대가 탄생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지지 기반을 다지며 작품을 만들던 감독과 배우에게는 지진과 해일이었다. 단숨에 휩쓸려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는 막을 수 없었다. 감독은 어렵게 변화를 수용했고 새로운 제작 과정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에디는 달랐다. 에디의 자리는 더 젊은 배우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과거의 명성은 점점 통하지 않았다. 현장이 미치는 에디의 발언권도 전 같지 않았다. 에디는 감독과 대판 싸운 후 박차고 나온다. 늘 새롭고 충격적이 콘텐츠를 찾는 미디어 시장에서 에디는 더 이상 거물 신인이 아니었다. 한때 눈부셨지만 지금은 대체제가 많은 중고에 가까웠다. 에디도 앰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위한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

크고 아름다운 날들이 끝나가고 있었다. 에디는 방황 후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지만 큰 물건은 노후되우 과거의 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무리 자극해도 소용없었다. 에디의 자리는 다른 젊은 배우로 갈아 끼워졌다. 마약에 빠져 지냈다. 아무리 황홀경을 찾아 헤매도 과거의 영광은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을 신경 쓰지 않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외도에 빠진 한 포르노 배우가 있었다. (포르노 영화 촬영 스텝이었던) 배우의 남편은 자신을 멸시하는 듯한, 수치와 배신감을 뒤집어 씌우는 아내의 반복되는 외도를 목격한 후, 준비한 권총으로 아내와 뒤엉킨 남자를 쏘고 자신의 입 속에 총구를 쑤셔 넣은 채 방아쇠를 당긴다. 한 시대가 스스로를 끝내는 방식이었다. 한 시대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끝내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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