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맥퀸 감독. 위도우즈
네 명의 남편들이 죽는다. 거액의 돈을 훔치다 밴 안에서 온몸에 총탄이 박히고 맹렬한 폭발 속에서 불타 죽는다. 치아로만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시체는 훼손된다. 네 명의 미망인들이 남는다. 복수? 남편들은 돈 훔치다 경찰 대치 중에 전원 사망했다. 눈물은 빨리 말랐다. 먹고살려면 그래서 나도 살고 애들도 살려면 뭐라고 해야 한다. 그게 남편들이 하려 했던 범죄라도. 시카고의 흑인 밀집 지역, 계급, 인종, 종교가 이합집산하며 폭력과 비리와 살인을 부추기는 동네, 주체할 수 없는 상실감과 슬픔에 빠진 베로니카(비올라 데이비스)는 남편(리암 니슨)의 유품을 발견한다. 그리고 같은 범죄를 저지르다 남편을 잃은 남은 미망인들을 한자리로 모은다.
남편이 사라진 삶은 한 사람의 자리만 텅 빈 게 아니었다. 죽은 자들은 상처만 남겼다. 거대한 빚더미와 살해 협박의 공포만이 생계와 생존을 위협하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남편의 다음 계획이었던 다른 거액을 털기로 한다. 차를 구하고 장소를 탐문하고 사격을 연습하고 리허설을 한다. 미망인들은 모두 남편이 뭐했던 자들인지 알고 있었다. 상습적 가정폭력범, 가계를 저당 잡힌 도박꾼... 애들 아빠였다는 점 말고는 어떤 연민도 없었다. 장례를 치르며 닥친 슬픔은 상실의 슬픔보다 막막함의 슬픔이었다. 미망인들에겐 옵션이 없었다. 죽은 자들과 그들의 사회가 삶을 모조리 훔쳐갔고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자기 몫을 챙겨야 했다.
정치인들은 비리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종교인들은 그런 정치인들에게 표를 몰아주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선거의 목적은 정의의 실현이 아닌 권력자가 되어 온갖 혜택을 누리는 거였고 선거의 과정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는 게 아닌 방해물들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이런 세계에서 유일한 낭만은 죽은 남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었다. 그와 누웠던 침대의 빈자리를 더듬으며 눈물 흘리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는 나를 유일하게 진심으로 사랑해준 사람이었다고 회상하는 거였다. 디데이가 다가오고 살해 협박의 수위가 높아지는 중에도 이 하나로 버틸 수 있었다. 유일하게 사랑해준 사람. 그리고 선거 당일, 모든 거짓이 단숨에 폭발한다.
영화는 기존의 세계를 겨우 유지했던 세세한 기대와 의지를 배신한다. 흑인은 흑인을 서슴없이 죽이고, 흑인은 백인 장애인을 마구 칼로 찌른다. 흑인 목사는 흑백 후보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고 하고 흑인 후보자는 백인 범죄자의 흑인 아내를 살해 협박한다. 흑인 여자가 생계를 위해 자기 애들을 등 뒤로 한채 다른 흑인 아이들을 돌보고 백인 후보자는 자신의 정치 대선배이자 아버지인 백인 남자를 극도로 증오한다. 백인 범죄자는 자신의 흑인 자녀의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는 이유로 동료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아마) 아이까지 갖는다. 백인 흑인 통틀어 남자는 대부분 기득권이자 범죄자였고 백인 흑인 통틀어 여자는 대부분 경제적 사회적 계급적으로 약자였다. 미망인들은 남자들의 방식으로 범죄를 도모하며 위기와 맞선다.
그곳에는 캣우먼도 원더우먼도 없었다. 오랫동안 빼앗긴 자본을 다시 빼앗는 것이 유일하게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다. 어떤 성공도 미망인들을 휴양지나 럭셔리 호텔로 보내지 않는다. 입에 겨우 풀칠하며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게 했을 뿐. 그 와중에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을 뿐.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극 중 어떤 수컷도 기본을 견지하지 못했다. 백인 쓰레기와 흑인 쓰레기만 온갖 언론사 마이크 앞과 미팅 테이블 주변에서 아수라를 펼치고 있을 뿐. 남편들의 죽음은 어쩌면 언제가 올 수밖에 없었을 필연적 죽음과도 같았다. 홀로 남은 강한 여자들이 힘을 모아 현재를 이끌고 있었다.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자신을 구축하고 있었다. 기존 세상이 모조리 죽어 없어져도 살아남기 위해. 미망인들은 검은 가면을 쓰고 남자 권력자들 얼굴에 실탄이 장전된 총을 겨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