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도 우리를 상처 입은 자로 만들 수 없다

2020년 8월 10일

by Glenn






시간이 지나도 이건 아마 당사자에게도 쉽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 너의 그 말을,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를 기억한다. 얼마 지나지 않았고 맑고 선명하고 자연스러운 순간이었다. 그 말이 네 입에서 나와 내 귀로 들어왔을 때,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흔한 대사,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라구? 내가 잘못 들은 게 맞지?' 이런 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되묻지 않아도 될 만큼 정확하게 들었으니까.


네가 그 말에 담은 의미를 세세하게 묻지 않았다. 넌 그 말을 하고 싶었고 했으며, 하기 전에 이 말, 정확히 말하면 이런 표현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 말을 꺼낸 것은 '그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있기 때문에 한 것이다. 말, 행동, 습관, 인내심, 규율 등 할 수 있는 것을 늘려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알아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살기 위해 습득하고 알아가고 익숙해져야 하는 것들, 그것들을 여전히 수없이 경험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양과 질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때 아직은 전자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 때문에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너의 그 말을 듣자마자 당황했다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납득할 수 있었다. 너의 시간은 우리보다 훨씬 많이 남아서 앞으로도 이런 순간은 무궁무진할 텐데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우리 앞에서 솔직하게 너를 표현해줬으면 했으니까. 네가 앞으로 표현할 세계에 미리 잠금장치를 해두는 것보다 네가 스스로 그 너비를 측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우리도 결국 타인인데, 타인의 제약으로 규제할 수 있는 삶의 기준은 많지 않으니까. 결국 결국 스스로 정하고 판단하고 나아가야 할 것들이 늘어나야 할 테니까. 너의 온전한 삶을 위해서.


너는 그 표현의 불온함을 미리 알았고 우리에게 사전 동의를 구했다. 이런 표현을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은 건지. "나쁜 마음"을 제어할 수 없는데 이걸 말로 옮기는 게 맞는 건지. 우린 너의 불안을 알고 싶었고 알아야 했다. 너의 그 표현은 전혀 듣지 못했던 영역이었고 우리는 너의 경계가 보다 더 넓어졌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는 것도. 너의 생각과 감정과 지성의 모든 점선면을 다 파악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디론가 나아가고 흘러가길 바란다면, 시간과 중력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의 육체와 거기에 담긴 마음과 감정의 우주를 온전히 다스려야 한다면, 너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너는 우리의 전부니까. 우리는 네가 잠시 따라가야 할 과거니까.


우리가 네게 퍼부으려는 사랑만큼이나 우리에게 네가 주고 싶은 사랑이 얼마나 무한한지 우린 매 순간 감동하며 몸과 맘이 따스해지는 경험을 한다. 네가 얼마나 우릴 사랑하는지 아끼는지 적어도 우리가 함께한 시간의 진심만큼은 소박하게나마 알고 있다. 그래서 너를 제어하고 틀에 가두고 규범 속에서 묶어두기보다는, 너의 가장 가까운 공기가 되어 너의 온기와 팔이 닿을 곳에 위치한 세계의 문지기가 되어, 포근한 벽, 안전한 시간이 되어 널 미래의 상처로부터 미리 보호하고 싶다. 밀착된 시간 속에서 같이 자라나고 싶다. 우린 같은 토양 속에서 뿌리내리며 서로의 햇볕과 그늘, 수분 속에서 서로를 생장하게 하고 있으니까. 아직은 그 어떤 말도 우리를 상처 입은 자로 만들 수 없다. 그리고 널 상처의 말을 건넨 자로 위치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신념이자, 우리가 함께 보내온, 함께 보낼 시간에 대한 증명이다.






이전 27화도로시 엄마가 아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