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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Aug 28. 2024

나만 빼고 퇴사해2

중소기업 지역 청년 연쇄 퇴사 소설

명덕대학교 시청각실의 객석에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하진은 무대에서 자료를 띄우며 설명을 하고 인오는 행사 현장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그리고 인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인오와 찬형, 예주도 지금의 학생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시청각실을 찾은 적이 있다.


 “천기식품이라고 난 왜 처음 들어보지?”


 설명회 자료 책자를 보고 있던 예주가 말했다.


 “나도. 그런데 채용설명회를 할 정도면 큰 회사인가?”


 찬형이 거들었다.


 “큰 회사이면 유명해야지. 아무도 모르잖아.”


 인오가 답했다.


 “그래도 괜찮은 회사처럼 보이는데.”


 예주가 말을 꺼냈다.


 “난 뭔가 별로야. 느낌이 안 좋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놀랍게도 인오는 자신의 앞날을 예측하고 있었다.


 무대에 한명아 과장이 등장하자 세 사람은 대화를 멈췄다. 한 과장에게서는 뭔가  당차고 밝은 기운이 느껴졌다.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매력을 느끼고 같은 여자가 봐도 부러워하면서 닮고 싶은 그런 인상을 풍겼다.


 “지금부터 채용설명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천기식품의 경영지원부 과장 한명아입니다.”


 객석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채용설명회를 위해 모교에 방문한지도 올해로 벌써 다섯 번째네요. 항상 올 때마다 후배들을 만나 즐겁고 긍정적인 기운을 얻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아요. 그럼 본격적으로 채용설명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저희 회사 홍보 영상을 보겠습니다.”


 동영상 재생을 시작하면 80년대 분위기의 홍보 영상이 나왔다.


 “엄청 멋진데 카리스마까지.”


 “장난 아니다.”


 예주와 찬형이 한 마디씩 했다.


 홍보 영상의 재생이 끝나자 한 과장은 다음 화면으로 자료를 넘기며 본격적인 채용설명회를 이어갔다.


 “회사의 연혁, 현황은 넘어갑시다. 10년째 다니고 있는 저도 잘 몰라요.”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학생 몇몇은 채용설명회를 동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기업 인재상?”


 한 과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회사가 이런 인재를 원한다고 하네요. 이런 인재를 뽑지도 않던데… 창의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은 창의적이기만 하면 안 됩니다. 모순이기는 하지만 창의적이면서 복종을 잘해야 합니다. 창의는 자유로움에서 나오는 가치인데도 말이죠. 그리고 친화적인 사람도 우리 회사의 인재상이네요. 상사에게 잘 보이고 줄을 잘 서면 그게 친화적인 사람입니다. 끝으로 열정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열정은 야근까지 하면서 발휘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원하는 창의적인 사람, 친화적인 사람,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인재상에는 이런 뜻이 숨어 있답니다.”


 객석에서는 마치 종교 부흥회와 같은 열렬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시간이 흐르고 질의응답의 시간도 끝날 조짐이 보였다.


 “질의응답 질문은 끝났나요? 그럼 답변 할게요. 야근이 많은 편인지 그리고 야근이 무엇인지 걱정이 되는 거죠? 야근은 별 것 없어요. 이미 여러분들은 이름만 자율인 야간자율학습을 통해서나 학원에 다니면서 일찍부터 체험했잖아요. 우리나라는 국어, 영어, 수학뿐만 아니라 야근까지 조기 교육을 하는 참 훌륭한 나라예요. 그렇지 않나요? 앞으로 여러분이 하게 될 야근은 대구의 아름다운 야경을 만드는데 많은 기여를 한답니다. 대한민국의 직장인 덕분에 우리나라는 야경이 아름다운 국가예요.”


 통쾌한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오더니 끝날 줄을 모르는 분위기였다.


 “안 들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예주는 시청각실에서 나오며 그렇게 말했다.


 “지원해봐야겠다.”


  찬형도 천기 식품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뭔가 별로야. 느낌이 안 좋아.”


 인오는 자신에게 펼쳐질 모습을 아주 잘 알았다.


 “왜 괜찮아 보이는데.”


 “그러니까.”


 “저런 선배랑 일하면 좋겠다.”


 예주와 찬형이 말을 주고받는 동안 인오는 혼자서 심각하기만 했다.


 


 채용설명회를 끝낸 인오와 하진은 무대를 정리하고 차에 올라탔다.


 운전 중이던 하진이 신호를 받아 멈춰선 다음에 회사에 돌아가기 싫다는 말을 꺼냈다.  


 “이대로 그냥 집에 가자.”


 조수석의 인오도 그렇게 대꾸를 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오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액정화면에는 ‘천 공장장’의 이름이 떴다.


 “아~ 진짜!”


 인오의 인상은 구겨졌고 하진은 뭔가 아는 표정을 지었다.


 - 네, 공장장님.


 인오는 인상을 다시 펴고 전화를 받았다.


 - 왜 이렇게 안 와? 현장은 바빠 죽겠는데.


 공장장 천기풍은 다짜고짜 고함을 질렀다.


 - 가고 있습니다.


 - 빨리 와서 일손을 보태라고!


 기풍은 자기 할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우리가 뭐 놀다가 들어가나?”


 인오는 통화가 끊긴 다음에 성질을 냈다.


 “아, 지긋지긋해. 자기 조카나 부려먹지.”


 하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천영우는 드라마를 봐야 하니까 바쁘지.”


 “윤 대리님이 그만둔지도 거의 한달 쯤인가?”


 “벌써 그렇게 됐어?”


퇴사하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날벼락 야근 명령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야간 업무를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잔업을


끝내야겠다.


오늘 밤에도 내일의 야근이 내 머리에 스치운다.


'장안녕의 야근' - 원작 윤동주의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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