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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7시간전

나만 빼고 퇴사해24

중소기업 지역 청년 연쇄 퇴사 소설

며칠 후, 인오는 하진으로부터 곤 부장이 등장하는 뉴스 기사를 받았다. ‘신남대학교 폐교 결사 반대’라는 기사 내용에 건물 임대업자 및 신남대학교 폐교 결사 반대 위원장인 곤 모씨의 인터뷰와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 인오는 면접에서 곤 부장이 학교에 다닐 때 운동을 많이 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를 꺼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자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신남대학교 폐교 결사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가 해당 지역에 출마하기도 했다.  

인오와 인서, 엄마는 반월당역 23번 출구에 있는 결혼식장을 찾았다. 인오와 인서의 사촌인 인준의 재혼식이 열렸는데 나씨 가문 행사에 아빠는 불참을 통보하였다.


 “인동아, 넌 인준이가 두 번 갈 동안 한 번도 안 가고 뭐하냐? 여자 친구도 있고 집도 있다며? 그런데 왜 안 가냐?”


 큰 삼촌의 말에 인동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삼촌은 인서를 다음 목표로 삼았다.


 “인서야, 너도 얼른 가야지. 요즘 아무리 결혼을 늦게 한다지만 너 사실 노처녀 아니냐? 인영이 너도 그렇고. 참, 인영아, 2금융권에 들어갔다며? 조금 더 노력해서 1금융권에 들어가지.”


 인영은 갑작스런 날벼락에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계속 공격을 받았다.


 “1금융권에 들어가지… 그 소리만 100번은 들었어요. 1금융권에서 저를 안 받아주는데 뭘 더 어떡해요?”


 과거에 인준은 재수에서도 S대학교 입시에 고배를 마셔 Y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때도 삼촌은 조금 더 노력해서 S대학교에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리고 인준은 그런 소리를 처음 들어보지 않았다는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야. 조금만 더 노력하면 가능했을 수도 있잖아.”    


 인영은 머리가 어지러워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우리 인섭이가 이번에 과장으로 승진을 했는데… 신의 직장인 공기업에서는 워낙 경쟁도 치열하고 살아남기가 힘들잖아. 자기 혼자만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삼촌은 흡족한 표정으로 아들을 자랑했다.


 “과장이라고 했어요? 저번에는 대리에 이번에는 과장이네요? 승진이 참 쉬워요. 아버지, 저 공기업에 들어가서 3개월만 다니고 나왔잖아요.”


 인섭은 그렇게 사자후를 토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인오가 그를 뒤따랐다. 나머지 나씨 가문의 사람들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삼촌을 살피기만 했다.


 


 인섭은 속이 시원하다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네 마음이 편하면 그걸로 됐다.”


 인오가 말했다.


 “우리 집 옥탑방에서 지낸다. 야간에 알바나 다니고.”


 “그랬나? 고생이 많네.”


 “한심하지 않나?”


 “한심하기는… 참, 나도 회사에서 나왔다.”


 “뭐하려고?”


 “몰라?”


 “대책 없네.”


 “원래 그렇게 사는 것 아니가?”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서 살아라”


 “뭐라고?”


 “아… 내가 주제넘었나?”


 “아니. 그런 말… 처음 듣는다.”


 예식장 앞에 구급차가 도착을 했고 인오의 전화가 울렸다. 인서가 삼촌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알렸고 둘은 예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인준의 재혼식을 5분 정도 앞둔 시점에 삼촌은 병원으로 실려갔고 인섭이 동행을 했다. 그리고 인준의 재혼식은 그 전에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잘 이루어졌다.


 


 드디어 인오는 강원도 고성에 발을 내딛었다. 그가 묵을 곳은 ‘앰비셔스 게스트하우스’였다.


 ‘Boys, Be Ambitious!’


 ‘Boys, Be Ambitious!’


 ‘Boys, Be Ambitious!’


 인오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을 떠올렸다. 영어 시간을 앞두고 인오는 쉬는 시간에 독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 이유는 13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13번을 호출하였고 인오는 영어 문장을 읽으려고 했다.


 “13번 나인오. 꿈이 뭐야?”


 “네?”


 인오는 영어 선생님께 ‘꿈이라니요?’라며 오히려 반문을 하고 싶었다.  


 “꿈 말이야. 너는 꿈이 없어?”


 꿈. 마치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중세 국어의 단어처럼 느껴졌다.


 “평범하게 사는 게 꿈입니다.”


 인오는 그렇게 답변을 내뱉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람은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이다. 인오야.”


 며칠 전, 엄마가 했던 말이 난데없이 떠올랐다.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진짜냐?”


 인오는 멀뚱한 표정으로 머리만 긁었다.


 “열여덟! 대한민국 청소년의 꿈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니 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렇게 말을 꺼낸 선생님은 칠판에 ‘Boys, Be Ambitious!’를 적었다. 그리고 인오에게 선창을 하라고 했다.


 “Boys, Be Ambitious!”


 “목소리가 작다. 다시.”


 “Boys, Be Ambitious!”


 “너희들도 같이.”


 “Boys, Be Ambitious!”


 인오는 2학년이 끝날 때까지 반 대표로 영어 수업의 시작과 끝에 ‘Boys, Be Ambitious!’를 세 번씩 외쳐야 했다.


 30살을 넘긴 인오는 낯선 땅에서 꿈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봤다. 새삼스러운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최근에 꿈이라는 단어를 언제 물어보고 들어봤는지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 꿈을 물어보는 일이 많았고 남의 꿈을 듣기도 하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 꿈은 박물관의 유물로 전락해버렸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왜 그렇게도 꿈을 물어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인오는 이제야 깨달았다. 어른이 되면 생존만으로도 버거우니 꿈을 물어보거나 들을 시간이 없었다. 꿈은 사치에 가까웠다. 사람이 평생 묻고 들어야 하는 꿈이라는 말을 어린 시절에만 사용해버려 어른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변하는가 싶기도 했다.


 


 인오가 서프보드에 엎드려 파도를 탈 지점까지 양팔로 노를 젓는 패들링 동작을 익히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다리는 모으고 상체는 들어야 하는데 다리는 자꾸만 벌어졌다. 손을 너무 앞쪽으로 내밀면 힘이 많이 들어간다는 주의를 들었음에도 손은 자꾸만 앞으로 나가 인오는 금방 지치기 일쑤였다. 그리고 후유증인 근육통도 상당했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날이면 인오는 파도를 타지 않았다. 그 대신에 파도소리를 듣거나 파도가 치는 모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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