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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Sep 26. 2024

나만 빼고 퇴사해23

중소기업 지역 청년 연쇄 퇴사 소설

 다음날, 늦은 오전. 인오는 대봉교를 찾아 신천의 물줄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원규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원규가 사고를 쳤다.

“나 같은 것 살아서 뭐하냐?”


 인오가 전화를 받았을 때 원규는 통곡을 하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원규의 아빠가 원규에게 밥만 먹고 공부만 하는데 성적이 왜 이 모양이냐는 말을 했다. 그 소리를 들은 원규는 열이 받았고 그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아빠는 밥만 먹고 장사만 하는데 왜 그것밖에 못 버는데?”


 그 말을 뱉은 순간 원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무작정 집에서 나온 원규는 신천을 배회하다 인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라.”


 “내가 무슨 낯으로.”


 “우리 집도 매일 그런다. 내 성적 때문에 엄마, 아빠가 도대체 누구를 닮아 그러느냐며 서로 싸우고 난리도 아니다.”


 “왜 공부 때문에 가족이 서로 상처를 줘야 해?”


 “그러게 말이다. 공부가 뭐라고 가정불화를 제공하는지.”


 대봉교 둔치에서 밤이 새도록 둘은 그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원규는 다음날 새벽에 아빠의 출근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아빠는 화를 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원규는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아빠가 이제는 크지도 강하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 됐다. 어느 순간 보니까 나보다 키도 작고 힘도 없더라.”


 그 말에 인오는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네가 커버린 거잖아.”


 그 말을 듣고 보니 원규는 뭔가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크고 싶다. 우리가 커버리면 엄마나 아빠는 늙기만 하잖아.”


 둘은 어렴풋이 알았다. 어제는 미워하다가도 오늘에 생각하면 안쓰러운 그런 존재가 부모라는 사실을. 부모님도 우리를 생각하면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루 종일 이렇게 반성을 해놓고도 집에 들어가면 또 서로가 상처만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또 후회를 하는 일의 반복이 일어난다.


 


 “10대 시절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건가?”


 “뭐 별 수 있냐? 뭘 해도 달라지는 것도 없고. 현상 유지만 해도 잘하는 거지.”


 “우리 집은 이제 나한테 바라는 것이 없다. 개근상만 받아오래.”  


 “나도 그렇게 해주면 좋겠는데.”


 인오는 원규의 말을 듣고 정말 부러움을 느꼈다. 아빠는 또 한번 인오에게 그 성적으로 어느 학교에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공부로는 정말 답이 안 나온다고.”


 “야, 이놈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나도 모른다고.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마라.”


 “네가 드럼 대신 공부에 그 열정을 쏟았으면 달라졌겠지.”


 “그걸 왜 거기다가 갖다 붙이는데?”


 “드럼 치는 일은 직업이 될 수가 없다고 누누이 말했잖아. 그러면 알아듣고 공부를 했어야지.”


 “알겠다고.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한다는 게 그 모양이냐? 고3이 텔레비전은 왜 봐? 정신 상태 하고는.”


 인오는 더 이상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 방으로 들어갔다.


 “공부도 못하는 놈이 성질 머리는 또 왜 저 모양이야?”


 방을 넘어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어중간하게 했다는 죄로 벌을 받아야 하냐?”


 “우리나라에서 살면 어쩔 수 없지. 공부만 인정하는 나라에서 공부를 못하면 다른 방법이 없잖아.”


 “다시 태어나면 공부를 적당히 해도 혼나지 않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우리, 이번 생에서는 아주 착하게 살아야겠지?”


 


 원규와의 일을 떠올리며 걷던 인오는 수성교에 도착을 했다. 여러 마리의 두루미가 자유로이 날아다녔다.


 “나는 새로 태어나고 싶다.”


 언젠가 인서가 한 말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야지. 새라니?”


 “날아다니면 좋잖아. 여권도 없이 다른 나라에 갈 수 있고.”


 두루미를 보며 인서를 떠올린 인오는 방천시장을 향하다가 대봉학교에서 발길을 멈췄다. 대봉중학교·대봉상업고등학교·대봉여자고등학교라고 적힌 팻말이 많이 녹슬어 있었다. 인오는 드넓은 운동장에서 공연을 했던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점심시간이면 그곳에는 농구를 하는 학생들이 가득하기도 했다. 체육 시간에는 땡볕에서 무수한 잡초를 뽑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도 났다. 학교 주변은 많이 변해버렸다. 청구맨션, 대봉맨션, 송정맨션과 EBS <다큐프라임>에 나온 한양가든테라스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며 몇몇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는다. 삼익맨션, 청호맨션과 영화 <공작>에 등장했던 대구맨션은 거대한 아파트가 되었다. 인오는 예전에 지나가며 자주 봤던 아파트의 모습이 가물가물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지금은 문을 닫은 대봉도서관과 아직은 존재하고 있는 청운맨션을 지나 드디어 그곳에 도착을 했다. 옛집이 그대로 있어 반가웠다. 지금 살고 있는 집과 가까운 거리이지만 이상하게 찾을 일이 없었다. 오랜만에 방문을 하는 주제에 옛집이 그대로이기를 바라며 욕심을 부렸는데 정말 변함없는 모습이라 오히려 미안하기도 하면서 안쓰럽기도 했다. 여러 혼란을 마주한 인오는 그 집을 다시 만날 때는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면서 사진으로 남겼다. 대봉동을 둘러본 인오는 이천동의 남명맨션으로 향하다가 건들바위역으로 갔다. 그리고 여섯 정거장을 지나 북구청역에 내렸다. 그곳에는 대봉동에서 사라진 아파트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태평보성아파트, 우일맨션, 신흥맨션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의 광명아파트와 보우아파트는 사라지고 최근에 지은 아파트가 보였다. 바로 그 옆의 어느 주택에서 인오가 태어났다. 그곳은 또 다른 아파트로 변해 인오는 자신이 태어난 집을 찾을 수 없었다. 고성3가를 지나 고성2가로 온 인오는 고성아파트로 향했다. 당시에는 동네에서 최신 아파트였는데 이제는 터줏대감의 축에 들어갔다. 그리고 친척들이 많이 살았던 고성1가는 천지개벽 수준으로 아파트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 시절에 많이 돌아다녔던 기찻길 옆 좁다란 골목은 이제 인오의 추억으로만 남겨야 했다. 인오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 대신에 ‘기찻길 옆 아파트 살이~’라고 가사를 바꾸며 오랜만에 동요를 불러봤다. 북구청역을 시작으로 달성공원역, 서문시장역, 청라언덕역, 남산역, 명덕역을 지나 건들바위역까지 주변에는 온통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태평로, 남산동, 대봉동, 동인동, 봉덕동, 대명동, 고성동, 칠성동, 신암동, 신천동, 효목동, 원대동, 평리동, 내당동, 두류동, 감삼동, 중동, 두산동, 범어동, 만촌동, 두산동, 황금동 등 사방팔방으로 전역에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는 곳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오는 생각했다. 그 많던 원주민은 대체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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