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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Sep 25. 2024

나만 빼고 퇴사해22

중소기업 지역 청년 연쇄 퇴사 소설

 다음날, 인오는 아빠를 만나기 위해 유가읍의 비슬산 자락을 찾았다. 아빠는 퇴직 후에 산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팔공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낙동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치듯 두 팔 벌려 환영을 하며 광복의 순간을 재현하였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노? 살면 살수록 더 모르겠다.”


 퇴직을 몇 년 앞둔 시점이었다. 엄마와 아빠의 갈등은 정점에 달했다. 새삼스러운 문제는 아니었지만 노화에 따른 증상인지 아빠의 간섭과 잔소리가 늘어났다. 그러자 엄마는 더 이상은 힘에 부쳐 아빠와 같이 살기가 힘들다고 호소를 했다. 그리고 아빠의 퇴직 후에 두 분은 졸혼인 듯 졸혼아닌 졸혼같은 상태로 지내고 있다.


 아들의 갑작스런 방문에 아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인오는 퇴사했다는 얘기를 꺼냈다.


 “아빠, 이제는 아들이 다니는 회사가 아니니까 천기식품에서 나온 제품은 불매를 해라. 아들이 다니고 있어도 제발 사지 말라고 했는데…”


 그동안 아빠의 생활 흔적에는 천기 만두, 천기 어묵 등이 가득했다.


 “어디 좋은 회사에 가려고?”


 “아니, 아무 계획은 없다. 강원도에 갈 생각인데.”


 “강원도? 거기서 뭐하려고?”


 “나는 바닷가에서 살아보고 싶다.”


 “그래? 엄마는 뭐라고 안 하나?”


 “포기했지. 아빠는 내가 이러는 게 어떻다고 생각하는데?”


 “알아서 살아야지. 네 인생이잖아.”


 뜻밖의 반응이라 인오는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시절을 떠올렸다.


 


 “악기 두드리는데 무슨 돈까지 들여야 하는데?”


 “입시 준비 하게.”


 “뭐라고? 악기 두드려서 대학교에 간다고?”


  인오는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싶었다. 엄마의 반응은 당연했고 예상 또한 가능한 일이었다.


 “인오야,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공부 열심히 해서 너희 누나처럼 서문대학교에 들어갈 생각을 해라. 등록금은 저렴하고 집에서 다니기에 편하고 얼마나 좋노?”


 “서문대학교에는 무슨 과가 있는데?”


 “너희 누나가 다니는 미대하고 또 뭐가 있지? 야! 그건 네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가?”


 인오는 부모님께 대봉상고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대봉상고는 일반계 고등학교와 입시 점수가 엇비슷하고 취업률이 높으면서 학생들을 4년제 대학교에도 많이 보냈다. 하지만 인오는 대봉상고의 밴드부를 바라보았기에 겸사겸사해서 그 학교에 들어가고 싶었다.


 “대신 조건이 있다. 4년제에 들어가라.”


 그렇게 말한 사람은 아빠였다.


 인오는 대봉상고에 들어가서 열심히 드럼을 두드릴 수 있었지만 중학교 때 전교에서 날고 기던 아이들이 모인 관계로 성적은 중하위권에 가까웠다. 어느 날, 아빠는 인오에게 지금의 성적으로 4년제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인오는 불가능하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4년제에 들어가라.”


 “아빠, 내 성적으로는 따라지 대학교밖에 못 들어간다.”


 “따라지든 똥통이든 들어가라.”


 “우리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 불우이웃 돕기도 아닌데 왜 따라지 대학교에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에서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 살고 싶으면 따라지든 똥구덩이든 들어가라.”


 두 사람의 대화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한번씩 마주치는 아빠는 인오에게 4년제에 들어가라는 소리만 했다. 인오는 더 큰 갈등을 일으키기 싫어 마지못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만 했다.


 그리고 대학교 입학 원서를 쓰기 며칠 전. 인오에게는 공부를 하고 싶은 전공이 없었고 엄마는 공무원이 제일이라며 행정학과에 들어가라고 했다. 인오는 주민센터의 모습만 떠올려도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가운데 인오의 전공을 정해준 사람은 아빠였다. 본인이 관광버스 기사이니까 인오에게 관광학과를 권했다. 관광학과를 떠올렸을 때 인오는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아 전공을 삼기로 하였고 명덕대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권했다고?”


 인오가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니 아빠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모양이었다.


 “해준 것도 없는데 알아서 잘 자라서 고맙다.”


 난데없는 말에 인오는 당혹스러웠다. 아빠의 입을 통해 고맙다는 말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엄마가 먹이고 입혀서 지금 이렇게 있지.”


 “그래, 그러고 보니 그렇네. 너희 엄마가 수고가 많았지.”


 “아빠도 자식을 둘이나 키운다고 애썼잖아.”


 무안한 표정을 짓던 아빠는 멋쩍게 웃었다.


 “도망가고 싶었던 적은 없나? 난 진짜 신기한 게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우리 둘을 키웠는지 의문이다.”


 “내가 선택한 일인데 별수가 있었겠나?”


 이번에 아빠는 넋을 놓고 해탈에 이른 미소를 지었다.


 “아빠, 내가 어떻게 살면 좋을까?”


 인오의 물음에 아빠는 한동안 답이 없었다.


 “산에서는 말이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걷게 되더라. 처음에는 막막할까 싶었거든… 그런데 걷다 보면 이런 길도 나오고 저런 길도 나오니 재미가 있더라. 인오야, 네 발길과 내 발길은 같을 수 없잖아. 그래서 내가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인생을 이렇게 저렇게 살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인오는 고개만 끄덕였다.


 “뻔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겠지. 걷다 보면 어디라도 도착을 한다.”


 그렇게 말하며 아빠는 인오의 어깨를 두드렸다.


 “알았다. 아빠, 건강 잘 챙기고 천기식품은 불매 좀 했으면 좋겠다.”


 인오는 엄마에게 아빠를 만나고 온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엄마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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