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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Sep 24. 2024

나만 빼고 퇴사해21

중소기업 지역 청년 연쇄 퇴사 소설

 쉬는 날에 늦잠을 자겠다는 계획은 어김없이 어그러진다. 인오는 아침 일찍 눈만 뜨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시간을 보냈다. 그때 방 문이 벌컥 열렸다.

“어디 아프나? 지금 몇 신데 이러고 있노?”


 엄마의 말소리에 인오는 몇 시인지 되물었다.


 “8시 다 되어 간다. 어디 아프나?”


 “아니. 건강하지.”


 “아프지도 않은데 왜 이러고 있노?”


 “퇴사 했으니까.”


 “뭐? 뭘 했다고? 야가 지금 뭐라카노? 인서야, 여기 와봐라.”


 인서는 대답 대신 비명을 질렀다.


 “뭐고? 저거는 또 무슨 난리고?”  


 아들의 퇴사 이야기와 딸의 비명에 엄마는 아닌 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


 인서는 거실로 나온 인오에게 다짜고짜 화장실에 들어가라고 했다.


 “왜 무슨 일이고?”


 엄마가 인서에게 물었다.


 “달팽이.”


 인오는 화장실 벽에 붙어있던 민달팽이를 손바닥에 올려 거실로 나왔다.


 “아휴, 불쌍하네.”


 엄마가 말했다.


 “징그러워 죽겠는데 불쌍하다니?”


 인서는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달팽이는 날 때부터 집이 달려있는데 야는 집도 없잖아.”


 인오는 스파티필룸의 이파리에 민달팽이를 올려놓았다.


 “집에서 키우려고?”


 인서가 물었다.


 “이파리만 먹이고 내보낼 거다.”


 “나인오~~~ 네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회사를 관뒀으면 다른 곳에 가려고?”


 “이직? 그건 생각을 안 해봤는데.”


 “뭐라고? 인생을 포기했나?”


 “아니. 퇴사는 했지만 인생은 포기 안 했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노? 인서야, 야가 어떻게 됐나 보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일하면 되지.”


 “아휴, 야까지 또 왜 이러노? 대책 없는 정신머리로 나중에 처자식은 먹여 살리겠나? 집을 살 돈은 있고? 일을 안 하면 거리에 나앉을 거가?”


 “엄마, 그건 나도 모르겠다.”


 “뭘 믿고 팔자가 이리 늘어졌노? 아휴, 속 터져.”


 인서와 엄마는 출근 시간이 되어 집을 나서야 했다.


 


 곤 부장은 출근을 하여 자신의 책상에 나란히 놓인 2통의 사직서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팔공산 약수로 막걸리를 만든다는 광고를 하면서 실제로는 수돗물을 이용하는 모습을 촬영해놓았으니 퇴사 처리에 필요한 절차는 알아서 해달라는 내용을 읽고는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라는 표정만 지었다.


 


 ‘아예~ 퇴사자 인 더 하우스.’


 퇴사 첫날. 인오는 집에서 민달팽이를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시 한 편을 떠올렸다.


 


민달팽이 편지 - 손인선


 


애써 가꾸던 화초,


이파리 다 뜯겨 화가 난 주인한테


민달팽이 온몸으로 남긴


한 줄짜리 반짝이 편지


-미안하지만, 열심히 사는 중이에요~



 인오는 어느 정도 배가 부른 민달팽이를 앞마당 화단에 보내기로 했다. 처음에 민달팽이를 봤을 때 불쌍하다고 여겼는데 다시 돌이켜보니 집이 없어서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자유롭고 싶어서 달팽이는 일부러 집을 벗어 던졌는지도 모른다. 인오는 자신도 온몸을 다해 열심히 살며 반짝이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을 넘겨도 회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자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여겼다.


 오후에 인오는 하루 종일 생각에 잠겼다. 퇴사를 한 친구, 후배, 동기들은 모두 그럴듯한 계획과 실천이 있었다. 그들을 생각하니 인오는 지금까지 자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버린 일이니 지금이라도 다시 무언가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갑자기 한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이 육지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올랐다. 문득 지겨움을 느낄 때까지 바닷가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장 지도를 검색하여 강원도 고성군으로 떠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 울진, 영덕, 포항, 울산, 부산 등 동해안의 지역을 눈여겨봤다.


 


 “어딜 간다고?”


 “강원도 고성.”


 “거기에 뭐가 있는데?”


 “몰라.”


 “너희 아빠 닮았나?”


 인오는 엄마에게 1년 정도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오겠다고 말을 꺼냈다.


 “차라리 너희 아빠처럼 산에 들어가던가.”


 “나는 산은 별로고 바닷가에서 살아보고 싶은데.”


 “아빠는 산바람이 나고, 아들은 바닷바람. 잘하는 짓이네. 나도 모르겠다. 네 인생 알아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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