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안녕 Sep 23. 2024

나만 빼고 퇴사해20

중소기업 지역 청년 연쇄 퇴사

 

“공무원 생활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거의 9년 넘었죠.”


 “민원인과 상사한테 시달리고 잦은 야근까지… 이건 화병입니다.”


 “화병이요?”


 “호흡 곤란 증세에 몸이 쑤시는 증상, 식욕 저하에 불면까지… 화병 맞습니다.”


 한날은 30대 후반의 하진이 의사와 상담을 받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다른 날에는 30대 후반의 하진이 출근길에 갑자기 쓰러졌다. 잠시 후, 하진의 영혼이 깨어나 쓰러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진은 자신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엄마와 아빠가 본인의 영정사진 앞에 있는 모습이 보였고 저승사자가 나타나 하진의 영혼을 데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진의 영혼은 엄마, 아빠를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깐만요.”


 그 소리에 저승사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저, 억울해요. 연금만 바라보면서 박봉을 받고 일을 했거든요. 10년도 못 채우고 죽었으니 억울해요.”


 “일시금으로 받을 수 있어.”


 “정말요?”


 “그리고 산재도 인정받을 수 있을 거야. 병원에 다닌 기록이 있잖아.”


 “아… 힘들 때마다 병원에 가길 잘했네요.”


 “얼른 가자. 시간 없어.”


 하진의 영혼은 자신이 엄마, 아빠의 노후는 해결하고 가서 다행이라며 안심을 한 다음에 저승사자의 뒤를 따랐다.


 


 매번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하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어딘가 기분도 좋지 않았다. 출근길은 고역이었다. 길거리를 걷던 하진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여기서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


 하진은 출근하던 길을 되돌려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난간에 발을 딛고 오르던 하진은 누군가가 자신의 팔을 잡아 뒤로 떨어졌다.


 “괜찮아요?”


 하진은 경비원의 말소리에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306호 아가씨. 설마… 아니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 말에 하진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다음에 연차를 내고 공원을 찾았다.


 


 - 다시 말해봐? 뭘 했다고?”


 - 우리 집 아파트 옥상에서…


 - 야, 이것아~ 아니 그런 정신머리로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려고… 다들 힘들어. 왜 이렇게 나약한 모습만 보이는 건데?


 - 나는 죽고 싶어.


 - 제발 정신 좀 차려~


 - 안 죽을 테니까 퇴사 할래.


 


 공원을 걸으며 하진은 대본을 만들어봤다. 죽음 대신에 퇴사를 선택하겠다는 말에 엄마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곰곰이 떠올려봤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엄마를 비롯한 그 누구한테도 하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하진은 의원 면직에 필요한 소속, 직위, 성명, 생년월일 등의 정보를 입력하였다. 그리고 면직 사유에 ‘살고 싶어서’를 적었다가 지우고 ‘살기 위해서’로 고쳤다.


 의원 면직을 이루고 나자 하진은 막막하기만 했다. 1주일 정도 고민을 한 끝에 막연하게 공기업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처음에는 단기직 일자리를 병행하면서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차라리 중소기업에서 잠깐 일을 하고 돈을 모아서 나오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런데 중소기업 입사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면접의 기회를 얻은 곳이 천기식품이었는데 곤 부장과 일을 하면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진에게는 그동안 수많은 민원인을 접한 경력이 있으니 어쩌면 그를 이겨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동기들이 떠날 때마다 하진도 그들처럼 그런 선택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단기직 일자리나 다른 중소기업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공기업 준비에만 매진하기 위해서는 잠깐의 시간을 벌어 희생을 할 시기라고 여겼다. 그리고 하진은 더 이상의 퇴사는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컸다.


 천기식품에서 영업 업무를 하며 다양한 거래처를 접하면서 하진은 지금껏 자신의 팔자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사업을 꿈꾸기 시작했다. 거래처 사장님은 젊은 사람이 기특하고 야무지다면서 하진을 지지해주었다. 그리고 하진은 사업을 통해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설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두 번째 퇴사. 첫 번째 퇴사와는 다르게 마냥 기분이 좋았다. 하진은 취기가 살짝 오른 얼굴을 했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 건설 현장에서 추락한 남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경찰 수사와 별도로 노동 당국 역시 해당 사건의 경위를 파악할 예정입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이틀 사이에 초등학교 교사와 중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


 


 버스 안에서 흘러나온 뉴스를 들은 하진은 내려야 할 정류장이 아님에도 하차를 하였다. 그리고 무작정 걷고 걸었다. 그러다보니 한적한 공원이 나왔다.


 하진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직장에서 누군가에게 시달리다가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언제까지 나오는 걸까? 그리고 하진은 언제쯤 자신이 그런 소식을 들어도 무던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다가 접었다.


 하진은 자우림의 ‘샤이닝’을 부르며 공원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이전 20화 나만 빼고 퇴사해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