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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Sep 20. 2024

나만 빼고 퇴사해19

중소기업 지역 청년 연쇄 퇴사 소설

꿈이 이루어지면 마냥 좋을까? 인오는 대출 상환이 끝나면 퇴사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천기식품에서 뼈를 묻을 각오는 당연히 없으니 언젠가는 그만두어야 하는데 그 상황에 처하니 그저 막막하기만 할 뿐이었다. 인오는 이룰 수 없는 꿈이나 이루지 못한 꿈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듯했다. 여전히 퇴사의 시기를 고민하면서도 인오는 신입사원 입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곤 부장은 인오와 하진에게 신입사원들이 첫날부터 근무 중 퇴사를 하지 않도록 감시를 잘하라고 했다. 그 말에 두 사람은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사건은 점심시간에 발생하였다. 인오는 점심 식사 후에 편의점에 들어간 신입사원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신입사원이 탈출을 위해 각도를 재는 기미는 벌써부터 빤히 보였다. 인오와 신입사원이 편의점에 들어갈 때 3살의 어린아이와 엄마도 함께 있었다. 신입사원은 물건을 고르는 척하더니 편의점에서 나가버렸고 인오도 그를 뒤쫓으려던 순간 자신의 다리를 붙잡는 아이가 보였다. 인오는 아이를 잘 타이른 다음에 신입사원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얼마나 달렸을까. 가쁜 숨에 허덕이던 인오는 잠시 멈추고 하늘을 봤다.


 


 아


 난 무엇을 찾아 헤맸나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찾아


 그토록 아파했나


 사라져 버릴 꿈을 위해


 바꿔


 이젠 다 바꿔


 그 모든 걸 바꿔


 거꾸로 돌아가는 이 세상을


 바꿔


 지금은 비록 밤이야


 앞을 못 볼 뿐이야


 하지만 내일은 해가 뜨고 말거야


 바꿔


 불광불급


 미치지 않은면 결코 미칠 수도 없다


 바꿔


 사람 밑에 사람 없다


 그리고 사람위에 사람 없다


 


 곤 부장은 매번 그랬듯이 올해도 어김없이 발생한 신입사원의 근무 중 퇴사 사건에 대한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물었다. 지금까지는 윤 대리가 그 책임을 감당해야 했다. 곤 부장은 인오에게 현장 야간 근무, 하진에게는 현장 새벽 근무 지시를 내렸다. 두 사람은 윤 대리가 겪었듯이 어떤 조치가 떨어질지 잘 알고 있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기로 합의를 했다. 그리고 곤 부장이 퇴근을 하고 난 다음에 인오와 하진은 조용히 일을 벌였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퍼붓고 쏟아내고 싶었다. 인오와 하진은 둘만의 회식을 열었다.


 “나 퇴사 경력… 있다.”


 하진이 그렇게 말하면서 전화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거.”


 사진을 찾은 하진은 망설이다가 인오에게 보여줬다.


 “진짜 너라고?”


 인오는 공무원 임용장을 들고 있는 하진의 모습을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범산동 주민센터 9급 출신.”


 “와… 아니… 공무원을 그만두고 우리 회사에 온 거야?”


 “그게 사연이 좀 있어…”


 하진은 한숨을 쉬었다.


 


 졸업을 앞둔 하진은 여느 공무원을 준비하는 수험생처럼 도서관에 틀어박혀 동영상 강의도 보고 문제집을 풀며 살았다. 신남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였지만 일반 행정직을 선택하여 1년 11개월 만에 합격을 했다. 구청 대강당에서 엄마와 함께 공무원 임용장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딸로서 도리 역시 어느 정도 했다는 생각에 뿌듯함마저 느꼈다.


 범산동 주민센터에 출근을 한 날. 하진은 간단한 소개와 함께 실전 업무에 들어갔다. 인수인계 따위는 없었다. 서류 뭉치를 건네받은 하진은 촉박한 업무 기한에 맞춰야 하는 일을 해야 했다. 어떻게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예전에 만든 자료를 찾든 알아서 하라는 말만 돌아왔다. 전부 자기 할 일에 신경을 쓰느라 남의 업무에 여유를 보일 수 없었다.


 나중에 하진은 신입 고용노동부 직원이 새로 생긴 사업을 맡으면서 초과 근무까지 일삼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소방관, 경찰관, 교도관의 자살 소식도 연달아 들렸다. 어느 날, 하진은 늦은 밤에 퇴근을 하여 엄마한테 하소연을 했다.


 “공무원의 업무가 원래 그런가 보다. 어쩌겠어? 너만 그런 건 아니잖아?”


 위로를 바라고 꺼낸 말은 아니었지만 하진은 일을 하며 힘들었던 얘기는 집에서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다른 동네와 비교를 하거나 다른 기관에서 담당하는 일을 처리해주지 않는다며 본인이 내는 세금으로 월급만 꼬박꼬박 받고 배짱을 부린다는 소리, 공무원이 대통령보다 더 상전이라며 청와대에 민원을 넣겠다는 협박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하진은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 가야 하는 실존적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자로 거듭났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힘겹게 태어난 것은 아닐 텐데 그렇다면 사람으로서 태어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지 찾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진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졌다.


 “엄마…”


 “왜?”


 “만약에…”


 “뭔 일 있어?”


 “혹시라도 내가 일을 그만두면…”


 “왜? 왜 일을 그만둬?”


 “민원인한테 시달리고 상사는 업무랑 책임감만 떠안기고…”


 “조금 있으면 1년이 다 되어 가잖아. 1년도 못 버티고 나올 생각이야? 참… 요즘 사람들 끈기가 없다고 할 소리가 아니었네. 내 딸이 이런데… 잘 생각해봐.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노후에 연금도 나오지. 너도 공부해서 힘들게 들어갔으니 잘 알잖아. 그래, 그만두면 뭘 할 생각이야?”


 엄마의 대사는 예상했던 대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하진은 화를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둘 생각 없어. 그냥 한 소리야.”


 


 부부 사이에도 상대방의 인감 증명서 발급을 위해서는 위임장이 필요하다. 그날도 민원인은 어김없이 자신은 한가한 사람이 아니니 하진에게 본인 남편의 회사에 가서 위임장을 받아오라며 떼를 썼다. 다른 민원인은 행정 처리에 기간이 걸리는 업무가 있음에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말이 되는 일이냐며 한탄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술에 취해 행색이 초췌한 민원인이 목발을 짚고 들어왔다. 그는 다짜고짜 서류가 든 봉투를 하진의 얼굴에게 던졌다. 하진은 애써 불쾌한 내색을 하지 않고 봉투를 열어 서류를 읽어봤다. 사회복지과의 업무였지만 담당자가 부재중이라 하진이 응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이건 재산 기준이 많아져서 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재산이 많아? 내가 무슨 재산이 많다고?”


 “이게 대도시, 중소도시, 농어촌에 따라 기준이 다르거든요.”


 “야! 일 때문에 이사를 했다. 그 기준은 누가 만든 거야? 어?”


 “그건 나라에서 정한 것이라서요. 그리고 오늘은 담당자가…”


 “그럼 내가 다시 이사를 가야 하냐? 어? 내가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왜 일을 이 따위로 하냐고? 어? 야, 일을 이 따위로 하면서 너희 월급은 오르지? 어?”


 민원인은 갑자기 목발을 들어 하진에게 들이밀었다. 하진은 사색이 되었고 직원들은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너희들 뭐야? 뭘 찍어? 찍지 마.”


 카메라를 들고 있는 직원들을 발견하고 민원인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때마침 경찰이 출동하였다. 민원인은 발악을 하고 난리를 피우면서 끌려갔지만 하진은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다. 그날 이후로 하진은 쉽게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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